어제는 힘든 하루였다. 밀린 일들이 몰아쳤고 화살이 나를 향했다. 누군가가 책임감을 갖고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반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대로 뒀다. 시간이 증명해줄 문제다. 빈수레 선생이 눈치없이 이야기를 꺼내 다른 동료와 언쟁 비슷한 신경전이 있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책상만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시간이 증명해줄 부분이다. 나도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다. 그보다 중요한 많은 일이 있기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겠다. 유재하의 노래처럼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이다.
부탁 혹은 지시받은 업무도 있고 해서 아침, 오후, 저녁으로 나눠서 일을 처리했다. 식사자리도 있어서 중국점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왔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지 않으려 노력해야겠다.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온실화되어가는 선후배를 본다. 선배들은 그러려니 하겠다. 후배들까지도 나보다 더 수세적인 태도로 일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 아니 좌절한다. 이런 감정도 낭비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사치일지 모르겠다. 그저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남탓하고 있을 건가. 그 시간에 나를 바꾸겠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환경을 바라보는 나를 바꾸겠다. 오래된 결론이다. 내가 어떻게 해나갈지가 남아있다.
오늘은 딸과 아들의 개학날이다. 든든한 아빠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은 하려고 한다. 영어표현으로 “I got your back!” 정도면 될까. 나중에 돌이켰을 때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이 오겠지. 먼 훗날에 반드시 오겠지. 이런 믿음으로 묵묵하게 하지만 굳건하게 걸어가야겠다. 다짐을 거듭하게 된다. 까닭은 내가 그만큼 위기의식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 모든 순간을 기회로 만들겠다는 마음만큼은 충만하다. 내 가치관에 대한 전폭적인 공감과 지지를 얻을 때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는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나의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시간과 역사가 증명해줄 문제니까. 말이 겉도는 것 같지만 여행에 대한 소회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캐나다 여행을 하면 꼭 반프를 봐야 하는 것일까. 마당 장의 말은 어느 정도 장난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여행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그의 수준을 나타내기에 실망스럽다. 내가 수준이 너무 높은 걸까.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나의 방식을 유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한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개의치 않겠다. 나의 어제와 나의 오늘을 비교한다. 나의 내일을 기대한다. 어제는 힘든 하루였다. 오늘은 더 나아질 것이다. 전혀 어렵지 않은 업무를 어렵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도 느낀다. 무슨 놈의 레드테이프가 이리도 많은지. 나는 내 방식대로 해나갈 것이다. 오늘은 샌프란시스코까지 운전해서 갔다와야 한다. 오후에는 미뤄놓은 인재유치 회의를 해야 한다. 저녁에는 외국어 수업이 있다. 바쁘겠지만 차분하게 하루를 운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