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 쇼크

교육의 역사를 바꾼 사건

by 지평선


코로나 상황에서 백신 개발은 인류의 과제였습니다. 느닷없이 러시아에서 최고의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백신의 이름이 스푸트니크(V, 2020.08.11)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지난날 러시아는 미국과 어깨를 견주며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강국 자리를 차지했었네요.



냉전 시대 미국과 대립하던 구소련은 세계 최초로 유인 인공위성을 발사합니다.(1957.10.4) 이 사건으로 미국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냉정시대 과학기술, 군비 경쟁은 더욱 강화됩니다. 그런데, 이 인공위성의 이름이 바로 스푸트니크이고, 미국이 받은 충격을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합니다. 백신 이름을 보니 미국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과학기술 강국을 꿈꾸는 러시아의 갈망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교육학, 특히 교육과정학에서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은 다른 의미로 뼈아프게 특별합니다. 스푸트니크 쇼크로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한 미국이 그 책임을 교육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학생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험주의 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실생활을 강조하는 이 교육과정 탓에 과학과 수학 같은 기초 역량이 무너졌고 그 결과로 소련에게 밀렸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스푸트니크 쇼크가 얼마나 컸던지 엄청난 변화를 동반하는 굵직한 정책들이 연달아 실행되는데 바로 이듬해인 58년 나사가 설립되고, 같은 해 과학기술과 군사력 강화를 위한 미국방교육법이 발효됩니다. 한마디로 교육을 미국방과 통합해 버린 셈이지요. 법이라는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주로 과학과 수학 교육을 위한 어마어마한 예산이 집행되었는데 그 첫걸음이 59년에 개최된 우즈호울 회의입니다. 과학과 수학, 심리학을 중심으로 34명의 각 학분 분야 석학들이 모여 미국의 교육을 성찰하고 검토한 뒤 미국 교육의 방향과 목적을 결정합니다. 서글픈 아이러니는 미국의 교육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회의였음에도 정작 교육학자들은 초청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학, 수학, 심리학자가 주도하는 이 회의를 바탕으로 "학문중심교육과정"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미국의 교육을 이끌게 됩니다. 그 내용은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저술된 "교육의 과정"이라는 책에 잘 담겨 있는데, 이 책의 저자가 당시 젊은 인지심리학자였던 제롬 브루너입니다. 브루너는 교육과정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학자인데, 현대 교육과정모델에도 적용되고 있는 역량/배움/이해중심 교육과정에서 무엇보다 이 모델을 현장 수업으로 구체화한 설계도인 역행설계모형의 토대가 타일러와 브루너의 이론일 정도입니다.



교육과정 개발: 출생 1921, 사망 1969
윌리엄 파이나



교육과정학의 출발은 1918년 프랭클린 보빗이라는 학자가 낸 책 "The Curriculum"을 그 시작이라고 봅니다. 이 책에서 사용한 과학적인 개발 방식이 학문으로서의 교육과정학의 뿌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후 1920년데 본격적으로 교육과정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불과 50년 만에 교육과정학은 사망선고를 받은 셈입니다. 직접적인 사망선고는 조셉 슈왑이라는 학자가 내렸는데, 하나의 학문이 병들어 죽게 될 때 발견되는 현상들을 정리하면서 당시의 교육과정학이 바로 그렇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내용을 담은 논문이 발표된 해가 1969년입니다.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로, 교육과정학은 우즈호울 쇼크로 결정적인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1960년대 말 교육과정을 전공하려는 대학원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교육과정학은 단순히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생존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막다른 곳, 절벽 끝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되나 봅니다. 1973년 젊은 교육과정학자들이 로체스터에 모여 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로부터 재개념주의(운동)가 시작되고, 교육과정학은 한 단계 더 성장하며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 회의의 책임자가 윌리엄 파이나입니다.



비록 우즈호울 회가 교육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찬밥 신세가 되었을 뿐 아니라 사망선고까지 내려지는 큰 사건이었지만 교육과정학의 역사는 우즈호울이 아니라 로체스터 회의를 역사적 분기점으로 기록합니다. 큰 틀에서 보면 학문중심교육과정 역시 이전 교육과정학이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란 교육과정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내용을 편성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플랜(편성) 또는 개발로 보는 것입니다.



1973년 로체스터에 모인 몸과 정신이 모두 배고픈 젊은 학자들은 교육과정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물었다면, 이제는 이렇게 묻습니다: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이들은 교육과정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는데, 이 질문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무브먼트처럼 오늘날까지도 교육과정은 완성된 학문의 모습보다는 고민하고 실험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역동적인 성장기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 아직 학문으로서 정립되지 못했다고 보고 교육과정이라 하기도 하고, 학문의 정체성을 지닌 교육과정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교육과정학의 학문적 특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자들 세계에서야 무슨 고민이, 얼마나 깊게 이루어지든 오늘날 현장에서는 여전히 개발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고, 교육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장 수업이 이루어지고, 평가를 통해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실험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흐름도 있습니다. 공교육이 주도하는 개발 패러다임과 주로 대안교육이 주도하는 이해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교육함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가르칠지 정하고 편성해서 절차에 따라 충실하게 진행하는 개발일까요, 아니면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는 것일까요? 명사일까요, 아니면 동사일까요? 흔히 교육을 경기장을 짓는 것에 비유하곤 합니다. 교육은 학생들이 정해진 길로 잘 달려가도록 경기장을 잘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경기장에서 달려가는 학생들의 경주와 경험에 더 주목해야 할까요? 물론 정답은 없고, 이상적인 답이야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정학의 역사는 어느 한쪽에서 정답을 찾으려 했으며 균형은 지금까지도 못 찾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역사적 현실은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개발을 하자니 학생이 소외되고 질식합니다. 학생에 맞추어 이해하자니 개인과 사회,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교육은 여전히 정체성과 길을 찾지 못한 쇼크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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