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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Jan 29. 2021

“아버님은 좀 참으세요”

'아버님'이란 호칭이 주는 의미

벌써 십수 년 전의 이야기다.  모 방송국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 중  ‘스타 도네이션’이란 것이 있었다. 음식점에서 유명 연예인이 나와서 일일 웨이터를 하고 행사 당일의 이익금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는 프로그램이다. 당시엔 밤에만 문을 여는 대형 실내 포장마차가 유행이었다. 이날은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대형 실내 포장마차에서 열렸는데 가수 비가 주인공이었고 비와 친한 연예인도 다수 참석했다. 차태현, 주얼리, 권민종, 장나라 등이 우정 출현했다. 슈퍼 스타 비의 인기는 엄청나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입장하지 못한 20대 팬들이 100m가량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길 기다려야 했다.


당시 주류 회사에 근무할 때인데 ‘서편제’라는 약주를 PR 하기 위해서 이 행사에 상품을 협찬했었다. 나는 신제품 홍보도 하고 새로운 문화 체험도 할 겸 행사 현장에 참석했다. 20대가 주축이 된 행사에 참가하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윽고 비가 등장하여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맨 처음 주문을 하려고 크게 소리를 쳐 불렀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개그맨 김현철이 나에게 대뜸 하는 말이 “아버님은 좀 참으세요”하는 것이었다. 좌중은 순간 와~하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사회자는 웃기려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참 머쓱했다.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버님이라고 부르다니... 같이 간 동료는 창피하다면서 자리를 일찍 떴다.


이 정도의 해프닝에 물러 설려면 아예 그 장소에 가지도 않았다. 재도전! 용감하게 비를 다시 불러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기왕이면 잘 보이도록 일어서서 주문을 했는데 첨부된 사진은 그때 한 장면이다. 이날은 그야말로 만원사례였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음식이 비워지면 자리를 비워달라는 요청이 바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자리에 있으려면 음식 주문을 계속해야 했다. 옆자리에 비의 팬클럽 회원들이 자리를 했는데 자꾸 쫓아내려고 한다며 도움을 요청해서 자리를 붙여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날 색다른 문화체험 이후 ‘아버님’이란 단어가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를 몇 번 더 경험했다. 예를 들면, 상점을 방문했을 때 젊은 점원이 “아버님 이리 오세요”라고 했을 경우에 퍽 당황스럽다. 그 점원은 별생각 없이 존칭의 의미로 ‘아버님’이란 호칭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 소리를 들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벌써 그런 소리를 들을 나이도 아니었고 평소 또래보다는 더 젊게 보인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터라 당혹감이 더 들었다. 특히 젊은 여성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차라리 아저씨라는 호칭이 낫다고나 할까.


나만 그런가 싶어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같은 의견이었다. ‘아버님’ 소리에 나 아니겠지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버님’의 주인이 자신이었을 때 당황한 경험을 얘기하곤 한다. 그러면 어떤 호칭이 가장 어울릴까? ‘선생님’이라는 말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선생(先生)’이란 뜻은 먼저 출생했다는 의미이니 딱 어울리지 않을까? 가족 간에 써야 할 ‘아버님’이란 단어를 낯 모르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나이보다 더 젊다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는 많다. 직장인의 46%가 실제 나이보다 몸이 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직장인 셋 중 둘은 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특히 젊어 보이는 옷차림과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응답했다. 한 시니어 컨설팅 전문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장년 고령층은 실제 나이보다 9세 이상 젊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장 흡족해하는  인사말이‘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라고 한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여성에게는 “날씬해졌다. 예뻐졌다 “는 말보다 ”어떻게 세월을 거꾸로 보내세요?”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찬사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유달리 강한 것 같다. 시장 조사기관 AC 닐슨의 자료에 따르면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젊다고 믿는 한국인의 비율이 세계 1위 수준이라고 한다. 전 세계 41개국 인터넷 이용자 22,7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인데, 30대가 ‘새로운 20대’라고 믿는 비율에 세계 1위이고, 60대는 새로운 중년이나 다름없다고 답한 비율도 75%로 일본과 공동 1위이다.


젊어 보이고 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오랜 숙원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지미 카터는 “후회가 꿈을 대신한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라고 했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 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 중략 -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흔히 청년은 ‘미래’를 얘기하고 중년은 ‘현재’를 얘기하고, 노년은 ‘왕년’을 얘기한다고 한다. 시드니 그린버그는 노인과 청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청년이지만, 과거의 전통과 방법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노인이다.”꿈을 좇고 미래를 얘기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었어도 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버님’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한다.



*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러한 생각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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