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불장난 한두 번 안 해본 사람 없을 것이다. 나의 첫 번째 불장난은 아마 7살 때였던 것 같다. 때는 음력 정월 보름 경 햇볕이 그리운 오후 나절이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집에 먹을 것이라곤 딱딱하게 굳은 가래떡밖에 없었다. 그런 가래떡이라도 불에 구워 먹으면 별미였다.
동네 친구하고 마당에서 놀다가 이 가래떡을 구워 먹기로 했다. 시골집엔 마당이 널찍하고 그 한편엔 볏짚단을 쌓아 놓은 곳이 있다. 그 볏짚으로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고 그런다. 친구하고 그 볏짚단에서 지푸라기를 뽑아내어 불을 붙였다. 불이 잘 안 붙어서 입으로 훅 불었던 기억이 난다. 금방 불길이 일었다.
그 위에 가래떡을 올려놓았다. 가래떡이 김이 몽실몽실 나면서 잘 구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이 가래떡 구울 만큼만 타야 되는데 옆에 있는 큰 볏짚단으로 퍼지는 것이었다. 발로 밟아서 끌려고 해도 쉽게 되지 않았다. 시뻘건 불길이 점점 넓게 번졌다. 음마~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 엄마 불났어!!! 빨리 나와봐바바바!!!"
어머니와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바가지에 물을 담아 뿌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 꺼질 불이 아니었다. 이제 시커먼 연기를 내며 번졌다.
'불이야' 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다. 한 7~8 명이 한 줄로 늘어서더니 양동이로 물을 전달하여 불길을 잡으려고 했다. 그 볏짚단 옆엔 바로 집하고 연결이 돼있다. 잘 못하면 집까지 홀라당 타버릴 것 같았다.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 누가 불냈는지 찾지는 않았지만 혼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슬슬 거길 빠져나와 뒷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보니까 시커먼 연기가 어렴풋이 보였다. 이윽고 불길을 잡고 불을 다 끈 것 같았다. 다행히 건물까지는 옮겨 붙지 않았다. 그렇지만 겁이 나서 집엘 못 들어갔다. 그냥 저녁까지 산에서 버텼다.
저녁 무렵이 되니까 사람들이 찾는 소리가 들렸다.
"병우야~~ 불 다 껐다. 빨리 나와라!!!"
너무 큰일을 저질러서 그런지 다행히 집은 안 태워 먹어서 그런지 어른들은 별말씀 안 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 볏짚단 옆에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불에 혼나서 그런 지 몇 년간 감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네가 불을 질러서 저런 거다" 얘기를 들어야 했다. 가래떡 구워 먹으려다 귀중한 한옥 문화재를 태워버릴 뻔했다. 자나깨나 불조심!
<곡전재 전경 / 우리문화신문>
그때 태워버릴 뻔한 그 집이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곡전재(穀田齋)이다. 지금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돼있다. 곡전(穀田)은 증조 할아버지의 호이다. 곡전재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터라고 해서 담장이 장방형이 아닌 금가락지 처럼 원형으로 지어졌다. 금환낙지는 '금가락지가 떨어진 땅'이라는 뜻으로 지리산 3대 명당으로 불린다.
당시엔 1,000여 평의 대지에 한옥이 5동, 대문 외에도 작은 문이 3개가 더 있었다. 대저택으로 대가족이 모여 살았다. 현재 곡전재는 집을 몇 채 증개축하여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6촌 형이 거주하면서 전통한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