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사실과 허구가 맥락없이 뒤섞인 듯,
눈 앞의 현실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경계마저 모호한 요즘이다.
계엄, 내란, 탄핵.. 그리고 무안.
저 차가운 바다에서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과 분노는 이태원에 이르러 탄식을 뱉어내고
다시 무안에서 피눈물을 흘린다.
짧은 시간 어떤 격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껍질이 벗겨진 푸석푸석한 민낯만 남는다.
그럼에도 나는 또, 별탈없이 살아낸 걸까.
세월의 흐름에 어지간히 무뎌지고
그래봐야 허구헌 날 중의 똑같은 하루일 뿐이지만
무심코 본 달력의 마지막 숫자가
모니터의 커서처럼 유난히 깜빡거린다.
생각은 늘 변함없다.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못한 일들이 매섭게 재촉하더라도
결코 조급해하지 말 것.
부질없는 미련과 그리움으로부터 단호히 헤어지기.
수능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 온 어느 어머니의 고민에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아이가 오늘 밤 12시 땡, 하면 친구들이랑 술집에 간다는데 괜찮을까요?"
-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요. 말리시는 게 어떨지
- 놔두세요, 별 일 없을 겁니다. 우리 때는 더 하지 않았나요?
- 요즘 애들은 술 담배를 너무 당연시해요...끌끌
- 아니, 이제 성인인데 그 정도 자축은 할 수 있지 뭘 그래요?
12월 31일 오후 세시 이십분 현재,
아직까지 별 얘기 없는 것으로 추측해보면
열아홉 우리집 아이는 인생 최초의 합법적 술집 출입까지 계획하진 않은 모양이다.
대신에 녀석은 1월 초 졸업식이 있는 다음 날,
친구들 끼리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어디로 가는데?
... 목포
목포면 1박으로 가긴 좀 멀지 않냐?
... 2박이야
헐.
놀러가서 사내 녀석들이 술 한잔 안 할 리는 없고
모름지기 주도[酒道]는 어른에게서 배워야 한다던데 오늘 저녁 송년 파티 때 캔맥주라도 슬쩍 권해볼까.
아니면 소주 위스키 막걸리 등등까지 줄줄이 구비해서
내친 김에 녀석의 알콜 기호도까지 테스트해 봐?
(아아..어느새 술을 두고 마주앉아도 될만큼 커버리다니)
각오했던,
혹은 예상치 못하게 길이 나뉘어진들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Adios 2024 ~
내일은 대망의 금연 1일차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