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병석을 떨치지 못했던 친구의 모친께서 구순을 목전에 두고 영면에 드셨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일산의 어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강변북로는 평소답지 않게 휑했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조수석 창문을 내리자 차가운 밤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차례가 되어 나와 함께 절하기 위해 나란히 섰던 김선수가 (그는 어려서부터 탁월한 유흥 감각을 인정받아 이름 대신 '선수'로 불린다)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다소곳이 벗어 들고 허전한 정수리 전체를 숨김없이 드러내자 뒤쪽 어딘가에서부터 '어머' '큭' '풉'하는 다양한 감탄사들이 하나둘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굳이 돌아보진 않았으나 애써 시선을 돌리며 서둘러 입부터 다물었을 그들의 표정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가발은 영 마뜩지 않다는 녀석은 와이프의 반대만 아니라면 관자놀이 부근과 뒤통수 아래께에만 아슬하게 남아있는 머리칼마저 말끔히 솎아내고 두피 전체에 진한 타투를 새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했다. 숙연히 듣고 있던 내가 미지근히 식은 콜라 캔을 집어 녀석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 검정색 유성매직도 대체제로 고민해 봐.
이윽고 한 무리의 조문객을 배웅하고 온 상주가 우리 테이블에 합류했다.
"여기 육개장 맛집이야, 많이들 먹어"
그는 나이 차이가 제법 지는 삼형제 중의 막내였지만 십여년 넘게 모친을 모시고 살며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돌본 유일한 자식이기도 했다. 내리쬐듯 실내의 조명이 너무 밝아서 잡티 많은 민낯이 더더군다나 번들거려 보였다.
"딴 집이랑 메뉴가 너무 겹친다. 접대가 소홀한 거 아닌가?"
"허. 남의 상갓집에 와서 반찬투정하는 놈은 너뿐인가 하노라"
어쩌다 보니 오늘 모인 셋 중에 양친이 모두 살아계신 경우는 내가 유일했다. 어느새 늙은 부모와의 작별이 그저 놀랄 일만은 아닌 나잇대에 접어든 것이다. 사족이지만, 얼마 전 작고하신 김선수의 부친께서는 강력한 탈모 DNA만이 아니라 서울 중심가에 자리잡은 상당한 가액의 부동산도 덩달아 물려주셨다. 무릇 인생사에 원하는 걸 모두 가지기란 쉽지 않은 법. 김선수가 볼품없는 헤어스타일에 좌절하며 비관할 때마다 몇몇 친구들은 그새 오른 땅 값이 얼만데 그깟 대머리가 대수냐며 그를 위로했었다.
집에 돌아와 상주의 안부를 묻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단호하게 남겼다.
내 장례식에는 통상의 장례식 음식들은 모두 물리고 필히 출장 뷔페를 부를 것.
메뉴는 내가 평소 즐겨 먹던 돈까스, 피자, 버거, 초밥 등과 각종 면류 - 냉면, 막국수, 짜장, 짬뽕 등으로 세팅할 것.
블루투스 스피커를 제단 근처 적당한 위치에 설치하고 오지 오스본의 'goodbye to romance' 부터 본 조비, 건스 앤 로지스, 스키 드로, 김현식, 그리고 신해철의 노래를 2박 3일 내내 틀어 둘 것.
쩝..하고 입맛을 한번 다시는가 싶더니 나보다 네 살 아래 아내가 이렇게 대꾸했다.
가는 건 순서 없다, 응?
#탈모무죄 #부자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