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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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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ilsang Oct 23. 2020

내 눈에 담은 제주

어느덧, 3개월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울고, 웃고, 그렇게 지난 시간을, 마지막을 담았다. 










가을의 문턱에서 제주의 억새를 만났다.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던 때에 제주도에 내려왔는데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도달했다. 내리쬐는 햇살이 뜨겁지 않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간의 노고를 씻어 내리기라도 하듯,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은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가려고 생각만 하고 가보지 않았던 곳, 가깝다는 이유로 나중에 와봐야지 하며 돌아보지 않은 곳 그렇게 나는 제주의 가을 억새를 만나러 새별오름으로 향했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해발 519M의 새별오름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기숙사에서 나와 택시를 불러 세우고 ‘새별오름으로 가주세요.’ 한 마디면 기사님께서 입구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주신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기사님께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오는 차가 없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오름에서 나오는 차가 없을 수도 있으니 입구에서 기다려주시겠다는 기사님의 말씀에, 걱정하지 마시라며 거절을 하고 택시를 돌려보냈다. 사실 등산을 힘겨워하는 나는 오름이라 할지라도 얼마 만에 내려올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고, 혹시라도 오랜 시간 기사님을 기다리게 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택시에서 내려 뒤돌아보니 둥근언덕의 새별오름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보는 것과 달리 오름을 오르는 길은 그리 완만하지 않았다. 오름의 양 끝에 오르고 내려올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높이에 비해 급경사로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숨이 가파르게 차올랐다. 



새별오름의 억새는 햇빛을 받아 은빛을 띄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파도를 생각나게 했고, 올라오며 힘들었던 순간도 잊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운동한 턱에 출출해진 나는 오름 아래의 푸드트럭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며 다음 목적지를 찾아보고 있었다.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찾아서 걷다 보니 주차장을 지나 입구까지 걸어 나오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택시 기사님을 돌려보낸 것을 후회했다. 입구를 지나 큰길까지 나왔지만 지나가는 택시는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이미 밖에서 타고 들어온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만 남아 있었다. 부랴부랴 택시 어플을 찾아 위치를 검색해보지만, 역시나 잡히는 차량은 없었고, 평온했던 시간은 금세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새별오름 아래 푸드트럭에서 사 먹은 간식, 힘들 땐 역시 탄산이다.


다행히(?) 지도를 보고 근처의 버스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지만. 큰길을 따라 걷다가 차가 오면 멈춰 서서 기다렸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면서 인도(人道)가 없는 길을 지나가는 건 다시 생각해도 무서운 일이었다.                






올여름,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 바다를 눈에 담았다.



발길이 향한 곳은 제주도 중문 ‘색달해수욕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문의 색달 해수욕장은 일을 하며 호텔에서 매일 내려다본 제주도의 가장 남쪽 바다였다. 지난 세 달간 수없이 바라봤으면서도 무엇이 궁금해 또 보러 왔나 싶겠지만, 사실 늘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터라 꼭 한번 두 발을 담가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특별히 찾아 나서지 않아도 손쉽게 여름을, 바다를,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가까이에 마주한 파도와 이제는 늦여름에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서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 앙증맞은 수영복을 차려입은 아이까지 어느 하나 제주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서핑하는 사람들


사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서핑을 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바쁜 스케줄에 쉬는 날이면 잠을 자거나 못다 한 빨래를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예약을 하고 강습을 받아볼까 휴대폰을 뒤적이다 그만두기로 했다. 다음 해에 또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오랜만에 그리고 한적하게 제주 바다를 온전히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지난 3개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고, 이곳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고, 평생에 한 번 경험하기 어려운 귀한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이 완벽하리 만큼 좋은 것은 아니었다. 힘든 시간이었고 어느 날은 속상했고, 선택한 것에 후회하기도 했으며, 물밀 듯 밀려오는 화를 참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에 감사하다. 이제는 안녕, 나의 제주도.














- 고       도 | 519.3M


- 전화번호 | 064-760-4993

- 이용시간 | 매일 10:00~17:00

- 입       장 |  무료

- 시설이용 | 공용주차장(152대 주차 가능), 화장실, 탈의실, 샤워실, 편의점

- 홈페이지 | http://www.visitje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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