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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과망상사이 May 13. 2024

자화상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떠보니 머리 위엔 티 없이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이 내 더러운 군화를 뒤덮고 있다. 낡은 원목 소재의 정자, 시들어버린 유채꽃이 가득한 꽃밭, 그리고 연보라색 탁자 위 하얀 김을 뿜고 있는 찻잔이 이루는 풍경은 마치 이곳이 어느 한 스위스 출신 건축가가 만든 듯한 정원임을 티라도 내듯 정원 특유의 엄숙함과 웅장함을 자아낸다. 이 공중정원의 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말한다.


“안녕하시오. 전 이곳의 그저 하찮은 지배인 정씨라고 하오.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탁자에 있는 차를 드셔도 좋소.”


나는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잊어버린 채 정씨의 말에 따라 뜨거운 찻잔을 든다. 부러질 것만 같은 정자에 정씨가 앉는다. 나는 발 밑에 깔린 구름의 구멍 사이사이를 바라본다. 저 멀리 판문점이 보인다.


“이곳이 어딘지 아시겠소?”


정씨의 질문이 무의미하게 이곳은 38선 위에 떠있는 공중정원임을 단순에 알 수 있다. 정원의 모양은 선을 따라 묵시록적인 모양으로 나있다. 나는 왜 이런 정원이 만들어졌는지, 정씨는 왜 이 정원 위에 있는지, 왜 하필 38선 위인지 여러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이제 막 탈영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목구멍엔 자물쇠가 걸려있다.


“그까짓 이념이 만든 1차원의 선이라니, 기이하지 않습니까?”


정씨의 질문은 나의 귀를 두드리기만 할 뿐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있다. 그 순간 공중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 한 장이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동쪽(나의 부대는 일산 근처이기에 그림의 위치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 멀리 안개에 가려져 있어 안보였지만 태양에 쫓기어 노란빛을 내뿜는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의 그것처럼 숭고해 보인다. 혀가 델까 몇 분간 잡고만 있던 잔을 입에 갖다 댄 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 그림은 무엇입니까?”


정씨의 놀라지 않는 기색은 이 질문을 만 번은 들은 듯하다. 썩어 버린 토마토 줄기를 하나 꺾어 펜 돌리기 재주를 선보이는 정씨는 대답한다.


“당신이 저 그림을 확인한다면 이 기다랗고 얇은 정원은 한반도의 허리로 낙하한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지요.”


나의 머리가 띵해졌다. 이제 입영한 지 겨우 두 달, 탈영한 지 세 시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내 생사를 선택하라니. 아니, 나의 죽음뿐일까. 어쩌면 내 선택은 전 세계에 유일하게 갈라진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예감에 나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나의 표정 또한 만 번은 본 듯한 정씨의 입가엔 믿지 못하겠다면 어디 한번 그림을 확인해 보라는 의미가 담긴 듯한 미소가 띠어있다. 그 미소는 나를 놀리는 듯 얄궂게 보이기도 하다.


“당신이 고민하는 이유는 오직 당신의 목숨뿐이지요? 이곳에 온 모든 탈영병들 또한 그랬으니 자신의 양심을 탓할 필요는 없답니다.”


나는 자신 이전에 왔던 탈영병들의 선택에 대해 생각한다. 여전히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존속하고 있으니 그들의 선택은 분명 그림을 보지 않는 쪽으로 기울였을 터이다. 나는 다시 한번 공중정원의 정경을 훑어보며 생각한다. 그들은 지옥 같은 군생활에 대한 회의와 불안에 지쳐 이곳으로 도망쳐 왔을 텐데 굳이 그림을 보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목숨 때문이었을까. 정씨는 차를 한잔 홀짝거리며 나를 향해 다시 그 야속하고도 엷은 미소를 보낼 뿐이다. 마치 그림을 확인하라는 듯.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 쓸데없이 건강하게 자라 신체검사 1급을 받은 것을 후회한다. 경상도 사나이랍시고 해병대로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 엄마와 누나의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냉정히 등을 돌린 것을 후회한다. 선임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을 후회한다. 그간의 나의 선택은 언제나 후회를 동반했다. 이번만큼은 다르리라 믿으며 발걸음을 동쪽으로 옮긴다. 정씨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림으로 향하는 나의 등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군화를 뒤덮고 있던 구름이 뭉그러진다. 주변 정원을 받치고 있는 하얀 기둥에 빠지직 금이 간다. 스멀하게 눈앞을 가리던 안개가 걷힌다. 태양빛은 여전히 뜨겁고 그림은 가까워진다. 그림 앞에 선 나는 이미 부서져 내리고 있는 공중정원 따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림은 말끔한 군복 차림에 당찬 눈빛이 서리고 엄중하게 다문 입술이 도드라진 나의 자화상이다. 무릎이 절로 고꾸라진다. 짙은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흐느낀다. 공중정원은 여전히 빛나고 있는 자화상과 함께 떨어진다. 눈 딱 감고 마음 속으로 셋을 센다.


하나, 둘, 셋… 툭! 내 목을 감고 있던 전선이 끊어지며 변기 위로 떨어졌다.


“야 박지현! 너 뭐해 이 새꺄! 죽지마! 죽지마 이 새꺄!”


공중정원은 무엇이었을까. 그곳을 지키는 정씨는 누구였을까. 정씨가 가리킨 그림엔 왜 내가 그려져 있던 것일까. 모든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다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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