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대차대조표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by 우롱

나는 만 26살에 5월의 신부가 되었다. 삼포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에 놀랄 만큼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신부가 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연애 기간이 길었던 것도, 남자 친구의 나이가 많은 것도, 부모님의 권유 조차 없었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그다지 준비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빠는 다르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우리 딸은 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계산해봐서 이놈이다 싶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용기 있게 결혼을 결심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흐른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참 맞는 말 같다. 어쩌면 나는 감정에 충실한 연애와 그 연장선상으로 결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선택 역시 나만의 계산 과정, 다시 말해 사랑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쓴 후 결정 내릴 수 있었다.


대차대조표는 특정 시점 기준에서 기업 소유의 자산과 부채, 그리고 자본의 금액을 보고하는 양식이다. 대차대조표의 특성상 대상의 가치를 뜻하는 자산은 내재화된 가치인 자본과 향후 상환되어야 하는 부채의 합과 동일하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딱딱한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게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산과 부채, 그리고 자본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기반으로 검토했기에 사랑의 대차대조표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상대방의 재력, 능력을 그가 지닌 자산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가치관, 경제관과 같은 추상적이지만 관계의 만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자산으로 구분하였다. 그러한 부분들이 앞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데 근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보통은 결혼을 결심하기 전에 이러한 고민을 끝내고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결혼 준비 기간 동안 더 깊게 고민하였다. 준비 과정 동안 예상치 못한 상황과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온전히 둘만의 의견과 힘으로 결혼을 준비하였음에도 서로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연애와 달리 결혼은 조금은 잔인하게도 현실적이었다. 차가운 현실 속에 날카로운 사랑의 대차대조표를 그려보았다. 그 결과로 27살 5월 말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유부녀가 되었다.

오빠가 우리 같다며 공유해준 일러스트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결혼 직후였지만 아기 엄마가 된 지금 마무리 지으려 보니 그 시절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귀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결혼 그리고 부부관계가 서로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사이이기에 다른 무엇보다 더 신중하고 계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동감한다.


먼 훗날 나의 딸이 결혼을 고민하게 될 때쯤에는 30여 년 전 엄마가 고안해낸 사랑의 대차대조표를 보여주며 현명한 선택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