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에서 찾은 공명

by 오유나

삶을 살다 보면 고독이 찾아올 때가 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학창 시절,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집단에 모였다. 나는 그들 모두와 잘 어울리려 애썼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면서 문득 깨달았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나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과 굳이 어울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별종이었다. 스스로 낙인을 찍은 건 아니었는데, 그냥 묘하게 세상 사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꼈다. 자아가 비대해져서 느낀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30대가 훌쩍 넘은 지금 돌아봐도 여전히 뭔가 이상하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 특수한 소리를 내는, 혹은 특이한 주파수를 내는 이들의 파형이 나와 겹치는 순간이 온다. 그들과 이야기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구나.


그럴 때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너무 고독하고 외로웠는데,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도 나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개개인인 것처럼, 일부가 같을 뿐 전체를 보면 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냥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그 요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순간을 찾게 된다.


모두가 이렇게 사는 걸까? 30대가 넘어서면 세상은 더 조건을 따지고, 시간과 에너지를 계산하며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더 고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는 성격이다. 혼자 있으면 고여 있는 느낌이 든다. 고인 물처럼, '내가 맞는지, 내가 잘한 게 맞는지' 자문하는 것만으로는 틀린 답이 나올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지는 않지만,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이런 관점도 있구나'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에너지가 고갈되지만, 그 속에서 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그 만남이 주는 위로가 고독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면 우리 모두 각자의 주파수로 울리는 존재들이고, 그 소리가 겹치는 순간을 찾아 헤매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고독도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문득, 어딘가에 평생 정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면 마냥 우울해진다.


그래도 계속 찾아 나선다. 나와 겹치는 주파수를, 함께 울릴 수 있는 그 순간을. 정착할 곳을 찾는 게 아니라, 공명할 순간들을 모으며 사는 것. 그것이 나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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