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내가 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 글은 Pragmatic Engineer 뉴스레터에서 발행된
『Working at Amazon as a software engineer – with Dave Anderson』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2년간 Amazon에서 일한 엔지니어링 디렉터의 회고를 통해, 제가 직접 경험한 실무 상황과 겹치는 지점을 돌아보며 AI 시대의 소프트웨어 설계와 엔지니어링 문화에 대해 사유해본 글입니다.
Amazon에서의 승진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L4(신입)에서 L5(자율적으로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비교적 수월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성과와 서류화된 근거”가 필요합니다.
승진을 위한 문서조차 '6-pager'로 작성되며,
동료와 상사, 그리고 바 레이저(Bar Raiser)로부터의 확고한 지지를 받아야만 합니다.
Dave는 말합니다.
"Amazon에서 승진 여부는 글을 잘 쓰는 매니저를 만나는가에 달려 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마음이 싸해졌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해도, 그걸 ‘문서로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사라지는 성과가 됩니다.
결국에는 개발자도 문서로 이야기해야 하고,
‘겸손’의 미덕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 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자신의 성과를 조직에 설득력 있게 공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Amazon에는 URA(Unregretted Attrition)라는, 일종의 ‘비공식 권고 퇴사’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해마다 6~10%의 직원이 조직에서 떠나야 한다는 비공식 목표가 있고,
이것이 때로는 PIP(Performance Improvement Plan)로 이어집니다.
물론 공식적으론 “가장 낮은 성과자 몇 명”을 의미하지만,
Dave는 이 시스템의 실체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하위 10%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팀이 안정적이고 인원도 많다면,
누군가는 결국 걸려야 한다는 압박이 매니저에게 생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도 누군가의 '상대 평가 대상자'였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있었겠죠.
한참 열심히 한다고 느꼈지만,
상사와의 관계가 어긋났던 그 시기엔 어쩌면 내가 불합격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성과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비교 대상이 존재하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누구와 일하느냐'에 따라 쉽게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개발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냉정하면서도 꼭 알고 있어야 할 진실입니다.
Amazon에서는 팀 간 이동이 매우 활발하다고 합니다. Dave는 말합니다.
“3년 동안 잘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매니저가 성과 피드백을 주기 시작한다면, 그건 정말 안 좋은 신호입니다. 최대한 빨리 도망치듯 팀을 옮기면, 인사 시스템에 '이동 불가(non-transferable)'로 찍히기 전에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자체로 잔인하지만, 동시에 조직 내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성과가 나빠서가 아니라,
매니저와의 관계, 팀 문화, 피드백의 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이 합쳐져
'불이익을 받는 구조'에 들어가는 순간, 탈출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조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좋은 매니저와 일할 기회가 생겼다면 그것을 놓치지 말고,
반대로 지금의 관계가 신뢰를 잃었다면 감정적 애착을 끊고 빠르게 환경을 바꾸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Amazon 문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좋은 매니저'가 있다면,
그를 따라 다른 팀으로 이동하고, 심지어 회사까지 옮기는 문화였습니다.
Dave는 말합니다.
“좋은 리더라면 조직을 옮길 때,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Amazon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문화다.”
이 말은 저를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리더였을까? 혹은 그런 리더를 내 옆에 두고 있는가?
나는 내가 신뢰하는 매니저, 나의 성장을 믿고 밀어줄 수 있는 동료와 일하고 있는가?
우리는 커리어를 조직이나 포지션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일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엔 반드시 나를 인정해주고 도와준 리더가 있었고,
반대로 내가 괴로웠던 순간엔 단절된 신뢰 관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Amazon은 냉정한 조직입니다.
그러나 그 냉정함 속에서 나오는 단단함은,
우리가 스타트업이나 기술 기반 프로젝트에서 겪는 문제들과 닮아 있습니다.
작은 팀에서의 운영, 장애 대응, 책임감 있는 코드 작성, 성과의 문서화, 리더와의 관계 관리.
모두 Amazon이 아니라도,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실무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Dave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문제를 피하지 않는다. 문제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문제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다시 설계해야 할까요?
조직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으며, 내 일의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를 둘러싼 시스템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있나요?
저는 오늘, 다시 제 일의 구조를 설계해보려 합니다.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정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