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늘 증명하려 애썼을까

by 오유나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상담을 받으러 오셨지?”


몇 번의 상담이 지나고, TCI 검사 결과를 보기 직전.
상담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그건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었다.
며칠간 나를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님이 느꼈던 진심 어린 인상이었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내가 정말 잘 지내는 사람 같았다고.
그러나 검사 결과지를 함께 펼쳐본 뒤,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선생님 스스로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정말 그렇게 보였을까?
내 안은 이유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으로 가득했는데.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던 밤이 분명 있었는데.
겉으론 ‘괜찮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사회성 좋은 사람이다.
낯선 사람 앞에서도 잘 웃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먼저 말을 건네는 데 주저함이 없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밝고 활기차다고 말했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내 ‘겉’이 조용히 무너지는 걸 느꼈다.

누군가와 웃고 있는 순간에도 내 안 어딘가는 텅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겉은 괜찮아 보이는데, 속은 자꾸만 파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를 증명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감각.
무언가를 해내야만 겨우 오늘 하루를 살아낸 느낌.


나는 늘 잘하려고 애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잘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탁월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어디에 있든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무언가를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해내고,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그제야 겨우 나 자신을 좋아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나는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빌려 내 가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나는 혼자서는 갖지 못했다.


검사 결과에는 ‘자기도취적 성향’이라는 말이 있었다.
읽는 순간, 마음이 불편했다.
주목을 즐기고,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며,
인정받는 순간에 가장 행복하다는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묘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혹시 내가 너무 나서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되진 않을까?’


하지만 상담사 선생님은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요즘 사회에서 이런 성향은 드물지 않아요.
병리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런 성향을 잘 활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요.”


그 말이 어딘가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나를 그렇게라도 증명하며 살아남으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어릴 적, 사랑은 늘 ‘조건’ 위에 놓여 있었다.

조금 더 똑똑해야,
조금 더 착해야,
조금 더 잘해야.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나를 드러내며 사랑을 구하고,
그러지 못할 땐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긴다.


나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
아니, 느끼는 순간부터 밀어내는 데 익숙해졌다.

화가 나면 ‘별일 아니야’라고 눌러버리고
슬퍼도 ‘내가 왜 이러지?’ 하며 금세 딴생각으로 돌렸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일단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이제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몸 어딘가에 쌓여 있었다.
말이 아니라 두통으로,
감정이 아니라 피로감으로.


그래서 요즘은 아주 작은 연습부터 하고 있다.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서운했다.’
‘나는 외로웠다.’

그 문장들을,
조용히 나 자신에게 되뇌는 것부터.


처음엔 어색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숨이 조금 트였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게 내가 나에게 돌아오는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실패 앞에서 움츠러들고,
거절당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내 존재가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사람은 늘 단단할 수 없고,
감정은 억지로 조용해지지 않는다는 걸.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먼저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나는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래서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믿기로 했다.


조금은 무르고, 조금은 흔들리는 나를
조금씩 안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나에게 말해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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