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아닌, 생존이었다

by 오유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고 말하긴 민망할 정도로,

그 시절의 기억은 너무 멀고도 흐릿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본 듯한 기분.


그 시절의 친구들은 대부분 1학년이 끝나기 전에 전학을 갔다.

여전히 연락을 이어가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지만,

가끔 만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면,

이상하게도 늘 어색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같은 학교 다닌 게 맞나?” 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대답하게 된다.
‘아, 맞다. 얘네는 1학년 때 전학을 갔지.’

그렇게 혼잣말을 되뇌며 친구들의 추억 속 풍경을 조용히 스쳐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A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 우리 중에 너만 ○○고 졸업한 거야.”


괜히 가볍게 웃어 넘기려다, 마음 한 켠 깊숙한 곳이 저릿해졌다.

문득 꺼내고 싶었던 말이 흘러나왔다.

“그거 알아? 어쩌면 ○○고를 졸업한 것보다 전학을 간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생존자가 아니라, 너희가 생존자였을지도 모르지.”


잠시 정적이 흘렀고, B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맞아. ○○고 쉽지 않았지. 거기서 버티고 졸업하는 거…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 나는 전학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위로 같았지만, 씁쓸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마치 내가 잘못된 길을 택한 것처럼 느껴져서일까.

나의 선택이 실패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였을까.


미성년자인 채 부모님의 품을 떠난 일.

친구, 선후배, 선생님으로 구성된 작은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날들.

수능이라는 무게를 감당해야 했고, 때로는 학교폭력을 견디거나 모른 척해야 했던 시간들.


글로 써보면 하이틴 드라마의 설정 같지만, 막상 돌아보면
‘내가 정말 그렇게 힘들었었나?’ 혹은
‘이런 건 다들 겪는 일 아닌가? 내가 괜히 유난 떠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졸업했다’는 말보다 나는 이 표현이 더 솔직하다고 느낀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다행히도 큰 상처 없이.


부모님은 지금도 종종 말씀하신다.
“그때 전학 가라고 강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네가 고생만 했지…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


나도 같은 마음이지만, 이렇게 답했다.
“그 선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그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그 경험이 결국 저를 성장시켰어요.”


돌이켜보면, 전학을 가지 않기로 한 건 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온 나를 비난받고 싶지 않았던 걸까?


누군가 “전학 갔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면, 마치 나의 과거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차갑게 반응했던 기억도 있다.


심리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경험은 분명 나에게 상처였다.
그 상처가 나의 성격과 삶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는 몰라도,
분명히 내 안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상처를 완전히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그 시절의 나에게, 생존자였던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싶다.

“괜찮아. 너는 잘 버텼어. 정말 잘 살아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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