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는 게 나쁜 건가요?

부탁과 의존, 그리고 ‘정당함’에 대해

by 오유나

AI 경진대회 공지가 올라왔다. H 대기업 사내에서 열리는 대회였고,

1~3등에게는 AI 관련 연수 기회와 차기 AI팀 배정이 걸려 있었다.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이기도 했고, 교육도 꽤 성실하게 들었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혼자는 어려웠다.

이론은 교육을 통해 들었지만, 환경 세팅부터 코드 실행, 베이스라인 분석, 최신 모델 적용까지 실전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마침 지인 중 한 명이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실력도 뛰어난 걸로 알고 있었다.

무보수로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소정의 과외비도 드릴 수 있고, 한 달 정도 코드 베이스로 AI에 대해 물어보는 걸로 하기로 했다. 이 대화를 통해서 AI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는 다 좋다고 했다.

커피 한 잔 값 정도만 받기로 하고 도와준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몇 번 만났다.

그는 코드도 공유해주고, 스터디카페에서 직접 만나 설명도 해줬다.


나는 점점 욕심이 났다.

단순히 AI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 1-3등 수상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점점 짧아지고, 무언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저 몇 가지 코드 에러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심지어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경진대회인데, 내가 이만큼 관여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이해가 안 됐다. 그럼 처음부터 도움을 주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처음에 기간을 얘기할 때 '도움 어렵다'고 했다면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았을 거다.

A 대학원 친구나 Y 회사 선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나는 그의 도움을 믿고 나머지 시간을 다 투자해서 대회에 집중했다.

결국 그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걸 포기하면 지금까지 쏟은 시간은 물론이고, 내 커리어에도 영향이 간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서면으로 질문 몰아서 보내는 것도 힘들까? 지금까지 해준 것도 너무 고마워서 50만 원 정도 감사함 전달할게. 상 받게 되면 100~200 더 드릴게."


내 입장에선 최대한 예의 바르게, 상대방 상황도 고려해서 조심스럽게 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 정도 페이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AI팀 구성을 준비하고 있고, 이번 대회는 그 첫 걸음이다.


내가 이걸 잘 마무리해서 그 팀에 들어가면, 나중에 그 사람을 우리 회사에 추천해줄 수도 있다 생각했다.

주 40시간 근무, 재택 2회, 연봉 9,500만 원, 사람도 괜찮고 복지도 좋다.

이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보답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더는 못 도와주겠다"는 거였다.

그의 '정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었고, '내가 대회에 너무 개입하게 되어서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도와주기로 했고, 실제로 도왔고,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 중간에 포기하면 나머지 책임은 내 몫이라는 건가? 정말 그럴까?


솔직히 말해,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이 세상에 정말 혼자서만 하는 사람이 있나?

다들 인터넷 찾아보고, AI 도구 쓰고, 지인에게 물어보고, 책 참고하고...

그게 다 공정하지 않은 거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리고 돈도 드린다고 했다.

시간당으로 따지면 꽤 괜찮은 금액이었을 텐데. 나중에 취업 기회까지 열어줄 수도 있다고 했고.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이건 내 윤리 기준에 맞지 않아. 돈을 준다고 해도 이건 할 수 없어."


결국 나는 큰 기회를 잃었고, 커리어에도 타격이 갔다. 그리고 솔직히, 아직도 화가 난다.

왜 처음에 도와주겠다고 했으면서 중간에 그만둔 건지. 왜 내 제안을 그렇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인 건지.


그게 뭐가 그렇게 비윤리적인가? 다른 참가자들도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을 텐데. 아니면 내가 특별히 더 많은 걸 요구했던 걸까?


어떤 기준이 공정한 것인지, 도와준다는 건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지, 지금도 머릿속은 복잡하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말도 안 되는 부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나의 부족함일 수도 있고, 세상과 나의 기준이 달랐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다시 묻고 싶다. 정말… 도와주는 게 나쁜 건가요?

아니, 이렇게 물어봐야겠다. 도와주기로 했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게 나쁜 건 아닌가요?




개발자의 입장에서: 그 ‘도움’은 어디까지였을까

사실 위 글에 등장한 ‘AI 개발자’는 바로 저입니다.
처음에 도와주기로 했을 때, 저도 진심이었습니다.
단순한 코드 리뷰나 방향 제시 정도라면 기꺼이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요청은 점점 달라졌습니다.

“이건 어떻게 짜야 하죠?”
“이 에러 해결해주세요.”
“여기 코드 좀 예시로 보여줄 수 있나요?”


밤늦게도 메시지가 왔고, 점점 경진대회를 함께 준비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내가 도와주는 게, 지금 이 대회에 참여하는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게 정말 공정한가?”


결론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금전적 보상도, 미래의 취업 기회도,
제 직업적 윤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경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도와주는 것’과 ‘대신 해주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지키는 일은 때로 오해를 낳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선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공정함은,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지켜낼 수 있는 가치입니다.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 일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성장은, 스스로 해냈을 때에야 비로소 진짜가 됩니다.


진짜 도움은 무엇일까요?

도움이란, 결과를 대신 만들어주는 일이 아닙니다.
성장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도움입니다.


부탁한 사람도, 도운 사람도
각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진심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때로 그 진심은, 서로 다른 정의와 윤리의 선에서 충돌합니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움을 주는 것, 받는 것, 그리고 멈추는 것...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혹시 당신도, 누군가의 요청 앞에서 난처하거나 괴로웠던 적이 있었나요?
아니면, 도움을 요청했지만 답답하거나 상처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 글이, 그런 경험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그 도움은 정당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
그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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