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선생님을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과학상자 대회를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특별히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오래 함께한 시간도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선생님이 좋았다. 그냥 좋았다. 어쩌면 어린 나이의 나는, 처음으로 어른에게 느낀 막연한 존경과 호감이었을지도 모른다.
2학년이 되었을 땐, 학년이 반으로 나뉘어 과학 수업을 다른 선생님과 듣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수업 대신 자주 과학실에 갔다. 그곳엔 선생님이 계셨고, 나는 선생님이 있는 공간 가까이에 있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과학실 게시판에 적힌 선생님의 비상연락처를 몰래 적어두었다가 문자를 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은 ‘어떻게 번호를 알았니?’라고 묻지도 않으셨고, 자연스럽게 나의 과학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선생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정말 사소한 질문도 많이 했다. 과학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물어본 질문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나의 호기심을 한 번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다. ‘이걸 왜 궁금해해?’라는 말 대신, 언제나 진심으로 답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과학이라는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호기심은 점점 깊어졌다. 어쩌면 과학보다 선생님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운명처럼 3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은 내 담임이 되셨고, 과학 수업도 직접 가르쳐주셨다. 그 시절 나는 유난히 반장이 되고 싶었고, 실제로 반장이 되기도 했다. 늘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지만, 3학년 반장은 유독 더 간절했다. 선생님의 눈에 좋은 제자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친구를 가리키며 “이 친구는 0순위 제자야. 너는 1순위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순간 너무 속상했다. 나는 왜 0순위가 아닌 걸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선생님의 결혼식 축하 영상을 만들었고, 친구들과 함께 축가도 불렀다. 당시엔 선생님이 미혼이셨기에, “성인이 되면 함께 여행 가요”라는 약속도 했었다. 물론 지금 선생님은 가정을 이루셨고, 그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시절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가르치고 계신 고등학교에서 AI 특강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나는 이제 AI 엔지니어가 되었고, 선생님은 여전히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하고 계셨다. 사례비가 많지 않다는 말도 덧붙이셨지만, 내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선생님의 부탁이니까. 무엇보다 내게 과학을 좋아하게 해 주신, ‘배움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신’ 분이니까.
나는 지금 그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선생님이 그 수업을 직접 들을지 안 들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 교실 어딘가에서 나처럼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한 사람의 따뜻함’으로 삶의 궤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
그리고 나는 언제나 강의를 준비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이 강의를 보고 만족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기 단 한 사람, 단 한 명의 삶에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더 조심스럽고, 더 마음을 다해 만든다. 이번 강의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의 제자들이 이 수업을 듣고, 그들의 삶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지금 이 시기 이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이 언젠가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선생님을 좋아했던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