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 줄에 어느새 백발이 되어
마음은 지치고 세속적 욕망만 가득하네.
성공서와 밥벌이 서적이 책상머리에 높아가고
때때로 마음공부도 놓지 못하리.
궁핍하고 구차한 인생
늦은 밤 애오라지 홀로 어두운 길을 헤맸네.
세간의 길은 사방팔방 이미 막혔는데
무엇이 초조하여 세월을 채근하는가.
서글프구나, 이승이여!
남루한 옷 입고 뒹굴며 자라
갖은 세상살이 기술을 배웠거늘
공명은 커녕 호구책도 못하고 팔다리만 굽어버렸네
도시에 차바퀴가 요란하고
휘황한 밤거리는 별빛마저 분질러버리는데
이 황혼에 무슨 홍복이 있어 그대가 날 찾아왔을꼬
이제야 비로소 얼굴에 미소 한 점 피어날까.
홀연 황홀한 에메랄드 빛깔로
어둠을 밀치고 오로라로 스스로 밝히신 존재여!
사위에 견줄 만한 것 하나 없이
단번에 떠올라 수미산을 밝히거늘
세상 사람들이 그대를 밝히길 주저해도
존재의 빛남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두둥실 만월같은 존재여!
허리 꼿꼿한 가부좌로 그대를 바라보네
서리 맞고 눈보라 일어도
성성한 수미산 정상의 주목처럼
시간이 내게서 사라지고
내 안의 텅빈 곳엔 새소리만 요란하네
돌아보니, 바람 휘몰아치는 세상살이
거짓 자아의 관인에 무용한 재주 요란했네
노비 같은 기색과 태도로
큰소리에 굴종한 비루한 인생이여
어쩌다 말년에 운이 열려
하늘 문을 열고 먼저 들어와서 보니
알량한 공명과 소유와 애달픈 번뇌들이
저 건너에서 수줍기만 하다네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뉘 말했던가.
존재, 존재, 존재여!
내 이제 죽어도 한바탕 껄껄 웃을 뿐이네.
***본 글은 본인이 아래 이하의 시의 구성법을 참조하여 작성함. 명상으로 찾은 존재에 대한 찬탄시로 재구성함.
진상에게 드림 贈陳商 /이하(李賀)
장안에 한 젊은이 있어 長安有男兒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늙어 버렸네 二十心已朽
능가경은 책상머리에 쌓아 두고 楞伽堆案前
초사도 손에서 놓지 못하네 楚辭繫肘後
곤궁하고 못난 인생 人生有窮拙
해 질 녘이면 애오라지 술잔만 기울이네 日暮聊飮酒
지금 길이 이미 막혔는데 只今道已塞
백발까지 기다려 본들 무엇하리 何必須白首
쓸쓸하구나, 진상(陳述聖)이여! 凄凄陳述聖
베옷 입고 김매며 제사의 예를 익히고 披褐鉏俎豆
오묘한 요순의 글을 배웠거늘 學爲堯舜文
사람들은 낡은 문장이라 나무라네 時人責衰偶
사립문엔 수레바퀴 자국 얼어붙어 있고 柴門車轍凍
해 기울면 느릅나무 그림자만 앙상한데 日下楡影瘦
이 황혼에 그대가 날 찾아왔으니 黃昏訪我來
곧은 절개 지키려다 젊음이 주름지겠네 苦節靑陽皺
오천 길 태화산처럼 太華五千仞
땅을 가르고 우뚝 솟은 그대 劈地抽森秀
주변에 겨눌 만한 것 하나 없이 旁古無寸尋
단번에 치솟아 견우성과 북두칠성을 찌르거늘 一上戛牛斗
벼슬아치들이 그대를 말하지 않는다 해도 公卿縱不言
어찌 내 입까지 막을 수 있으랴 寧能鎖吾口
나도 태화산 같은 그대를 본받아 李生師太華
책상다리 하고 앉아 한낮을 바라보네 大坐看白晝
서리 맞으면 잡목 되고 말지만 逢霜作樸樕
때를 만나면 봄버들 되는 것을, 得氣爲春柳
예절은 내게서 멀어져만 가고 禮節乃相去
초췌하기가 비루먹은 개와 같네 顦顇如芻狗
눈보라 치는 재단을 지키면서 風雪直齋壇
검은 끈에 관인(官印)을 차고 있다 하나 墨組貫銅綬
노비 같은 기색과 태도로 臣妾氣態間
다만 먼지 털고 비질만 할 뿐이네 唯欲承箕帚
하늘의 눈은 언제 열려 天眼何時開
옛 검(劍) 한번 크게 울어 볼 것인가 古劍庸一吼
이하(李賀, 791년 ~ 817년)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자는 장길(長吉). 허난성 복창(福昌) 사람이며, 당나라 황실 자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