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법 설명
윤회란 중생의 삶이 끝없이 순환한다는 개념이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게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란 말이 있다. 윤회는 이렇게 원인에 따라 결과가 일어나는 원리이다.
윤회를 작동시키는 원리는 카르마(빨리어로는 깜마)이다. 카르마는 ‘행위’를 말하는데, 위에서 말한 콩 심고, 팥 심는 행위가 곧 그것이다. 카르마는 업력을 일으키고, 중생의 업력에 따라 육도(여섯개의 세계,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 윤회를 한다. 윤회는 고대 인도에서 불교 이전에부터 개념적으로 있던 것을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태어남과 소멸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완성하여 설파한 내용이다. 위의 그림처럼, 12개의 조건에 의해 발생한다고 하여 ‘12연기법’이라 말한다. ‘연기(緣起)’라 함은 ‘인연생기(緣起生起)’의 준말로 어떤 조건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는 원리를 말한다. 연기법을 인연법이라고도 한다.
타 종교에서는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창조자가 ‘12연기’라 해도 무방하다. 무명이나 갈애, 집착에 의해 거듭되는 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십이연기법을 아는 사람은 바로 깨달음을 얻는다' 경에 나온 말이다. 그만큼 12연기법은 우리 인생고를 파지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12연기는 순환 과정을 표시해야 하므로 한 번의 삶이 아닌 두 번 이상의 삶을 설명해야 해서 말도 그림도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림 2]에서는 두 개의 삶으로 그려보았다. 윗부분 A는 미래 혹은 과거의 삶, 아랫부분 B는 현재의 삶이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A부분은 미래일 수도 있고 과거일 수도 있다. 즉, A의 (생-노사-무명-행)은, B의 (식-명색-6입-촉-수-갈애-취-유)와 동일한 내용이다. 낱말을 서로 달리할 뿐이다. 마치 거울을 보듯이 가운데를 축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 12연기 윤회도이다. 중생은 이 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반복되는 삶을 산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자. 12연기는 ①무명 ②행(업) ③식 ④명색 ⑤육입 ⑥촉(접촉) ⑦수(느낌) ⑧애(갈애) ⑨취(집착) ⑩유(업) ⑪생 ⑫노사 등 12가지 조건의 일어남이다.
12연기법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상당히 난해함을 느낀다. 되도록 쉬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듯이 설명해보고자 한다. [그림 3]
중생이 죽으면 구천을 헤맬 것이다. 그 중생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이므로 아직도 무명(無明)의 상태이다. 무명은 지혜의 상대적 개념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미혹한 상태이다.
무명이 조건이 되어 과거에 몸으로 짓고(身), 입으로 짓고(口), 마음으로 지은(意) 업력이 쌓이게 된다. 그 쌓인 업이 결정된 상태를 행(또는 결합)이라 한다.
그 중생은 그가 쌓은 업력에 의해 부모의 태를 찾아간다. 그것을 식(식별)이라 한다. 이 새로운 존재가 반드시 인간이란 보장은 없다. 다른 차원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가정하에, 좋은 업을 많이 지었다면 훌륭한 부모가 좋아 보일 것이고, 악한 업을 많이 지었다면 악한 부모가 좋아 보일 것이다. 부모가 나를 낳았다고 알지만, 실제로는 나의 업력에 의해 부모를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식이 조건이 되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몸이 생겨난다. 사대로 이루어진 몸을 색(色)이라 한다. 몸이 생기면 느낌과 생각과 인식 등 정신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데 이를 명(名)이라 한다. 이와같이 몸과 마음을 합하여 명색(名色)이라 한다.
명색이 조건이 되어 육입(또는 육처)이 점차 발달하게 된다. 육입(六入)이란 6가지 감각기관을 말한다. 눈, 코, 혀, 몸, 의지의 감각기관이다.
6입이 조건이 되어 접촉(觸)이 생긴다. 접촉이란 6입이 각각의 대상과 부딪침을 말한다. 즉 눈은 어떤 대상을 본다(色), 귀는 어떤 대상을 듣는다(聲), 코는 어떤 대상을 맡는다(香), 혀는 맛을 본다(味), 몸은 대상과 접촉한다(觸), 마음이 대상에 상대하여 의지가 생긴다(法).
6근이 대상과 접촉하면 당연히 느낌(受)이 발생한다. 느낌에는 3가지가 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중립적인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중생은 느낌에 이끌려 갈애(渴愛)가 생겨난다. 좋은 느낌에는 욕망이 발생한다. 나쁜 느낌에는 고통이 발생한다.
욕망이 생기면 취(取)함, 즉 집착이 발생한다. 탐욕에 집착하고, 소견에 집착하고, 계율에 집착하고, 자아에 집착한다.
집착이 쌓인 상태를 유(有)라 한다. 有란 갈애와 집착이 쌓여 만들어진 현생의 카르마 덩어리를 말한다. 이제 중생은 깨닫지 못한 상태로 수많은 카르마만 남긴 채 죽음에 이른다. 죽음 이후 중음 세계에서 다시금 무명과 업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부모의 태를 찾아간다.
카르마가 조건이 되어 다시 탄생하게 된다(生). 어느 집의 태에 들어가 갖가지 존재를 받아 다섯 근간(오온)을 얻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육입)을 받는다.
태어남이 있으면 늙고 병들고 죽음이 생겨난다(노사).
중생의 죽음은 무명과 업력이 쌓여있으므로 다시 거기에 맞는 부모의 태를 찾아 들어간다. 이렇게 무한 반복되는 것이 12연기의 원리이다.
위의 그림은 내가 쉽게 풀이하기 위해 만들어 본 것이다.
모든 탄생은 죽음을 수반하고
모든 죽음은 탄생을 수반한다.
이 윤회의 고리는 중생의 정형화된 삶의 패턴이다. 이 무한반복의 윤회를 끊는 것이 수행자의 최고선이고, 깨달음이고 열반이다.
이 윤회가 재밌고 이 윤회에서 아무런 고통이 없다고 하면 달리 수행할 필요가 없다. 아직은 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중생의 감각적 삶이 좋아 보이고, 욕망할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벗어나는 길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붓다가 해답으로 제시한 것은 그 유명한 ‘팔정도’이다.
팔정도는 8개의 수행법을 말하는데, 간추려 말하면 ‘계정혜’이다. 팔정도를 더 줄여 한마디로 말하면 ‘중도’의 실천이다. 8정도는 다음에 따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8정도의 핵심인 계정혜를 살펴보자.
계(界)를 지키라 함은 착한 심성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자신을 단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다음 단계인 정(定)에 이른다. 악한 짓을 하면서 선정에 들어갈 수는 없다. 살인하고, 간음하고, 술을 먹고, 약물에 취해서 선정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계를 지킴으로써 정에 진입할 수 있다. 정은 선정을 의미하며 명상을 의미한다. 마음 챙김, 알아차림의 명상을 통한 선정의 길에 들어선다. 깊은 선정에 이르면 지혜(慧)가 저절로 생겨난다. 지혜는 계와 정의 결과물 같은 것이다. 지혜는 12연기의 첫 번째로 나온 무명의 상대적인 언어이다. 계정혜는 수행자의 삼학(三學)이라 하여 윤회를 끊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완벽한 수행법이다. 좀 더 쉽게 말해, 착하게 살면서 명상하여 본래 성품을 찾게 되면 지혜가 생기고 윤회의 고리가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 3]에서 윤회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견고하게 묶인 사슬의 한 부분을 타파해야 한다. 그림에서 별표로 표시한 것은, 수행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끊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12연기는 중생의 윤회도이며, 이는 세상의 탄생과 소멸의 원리를 포괄적으로 말한 것이므로 수행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대상이다. 12연기는 악연의 고리이다. 그 악연의 고리에 3가지 독이 숨겨져 있다. 탐진치(貪瞋痴)가 그것이다. 욕망(貪)과 성냄(瞋)과 어리석음(痴, 무명)을 말한다. 이를 삼독(三毒)이라 한다. 욕망(탐욕)이 조건이 되어 성냄을 발생시킨다. 성냄이 조건이 되어 무명에 쌓이게 된다. 삼독은 중생의 족쇄다. 앞서 <아라한, 10가지 족쇄를 풀다>에서 10가지의 족쇄는 삼독(탐진치)의 확장판으로 10가지 욕망으로 구체화 한 것이다. 결국 아라한은 삼학(계정혜)을 통해 삼독(탐진치)를 극복한 사람이다.
12개의 연기에서 갈애, 집착, 무명이 수행자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갈애, 집착, 무명은 삼독의 탐진치와 같다. 앞서 수행자는 삼학을 통해 윤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학과 삼독은 언뜻 보면 다른 말 같지만, 빛과 그림자처럼 항상 붙어있다. 계정혜를 통해 탐진치를 소멸하는 것, 그것이 구도자의 해결 과제이다.
삼독을 하나로 줄이면 갈애(욕망)이다. 즉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생사의 수많은 욕망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무명을 벗어버리고 열반으로 이끈다. 비로소 수행자는 연기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가 앞서 소개한 명상 방식과 연결해서 말한다면, 갈애(욕망), 집착 등 소위 삼독은 마음에서 무언가 결핍이 생김으로써 발생한다. 결핍이 생기는 이유는 내 몸과 마음과 생각을 나라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당신이 믿는 육체는 그대가 아니다. 당신이 믿는 마음은 그대가 아니다. 당신이 믿는 욕망은 그대가 아니다. 당신은 온 우주에 가득찬 지켜보는 자이다.
참나명상을 하면 결핍이 없는 완전한 참나, 충만한 상태의 참나를 발견한다. 그 완전한 존재 앞에서 세속의 욕망은 저절로 꺼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