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다고, 말하는 일에 대하여
풍경이 아름다우면 그림 같다고 한다.
그림이 정교하면 사진 같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눈앞의 것이 자기 자리를 넘어설 때 우리는 다른 세계의 이름을 빌려온다.
현실은 그림이 되고 싶고, 그림은 현실이 되고 싶어 하며, 둘 다 자기가 아닌 곳을 향해 기꺼이 손을 뻗는 중이다.
요즘은 여기에 축이 하나 더 생겼다.
정교한 결과물을 보면 ‘리얼하다’고 감탄하면서도, 너무 말이 안 되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면
— 이를테면 강아지 일곱 마리가 열일곱 킬로를 걸어 주인을 찾았다는 영상 같은 것 —“이거 AI가 만든 거 아니야?” 하고 되묻게 된다.
진짜가 진짜의 한계를 넘으면 가짜 같고, 가짜가 가짜의 한계를 넘으면 진짜 같다.
의심과 찬사가 같은 문장 안에 살고 있는 기묘한 시절이다.
결국 “~같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라기보다 경계에 대한 고백이다.
내가 알던 범주 안에서는 도저히 이 경이로움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항복 선언.
그래서 내 세계 바깥의 이름을 잠시 빌려오는 것이다.
필름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한 지점에 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이 0과 1로 즉각 치환되는 시대에, 필름으로 남긴 기록은 그 자체로 이미 다른 시간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니까.
방금 찍은 지금 여기의 풍경인데도, 인화지 위에는 어딘가 아득한 기억의 냄새가 나고 지나간 계절의 입자가 섞여 있다.
설명하기 힘든 찰나의 온도를 위해, 우리는 ‘기억’이라는 이름을 빌려와 사진 위에 덧입힌다.
“~같다”는 말이 많아지는 시대다.
그만큼 우리가 정의 내릴 수 없는 경계의 존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름 없는 것들에 기꺼이 다른 세계의 이름을 빌려주는 일 —
어쩌면 그게 우리가 아름다움을 감당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