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무명의 용기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남은 적이 있는가.
별것 아닌 표정으로 툭 건넨 말이었을 텐데, 받은 쪽에서는 자꾸만 꺼내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말. 다정함에는 원래 이토록 묵직한 무게가 있었나 싶다.
처음엔 영화속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캐나다에서 외로워질까 싶은 순간 사진을 취미로 삼았다. 잘 찍어야겠다는 거창한 의지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필름을 넣고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좋았고,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담는게 재밌었다. 주위에 직업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내 사진은 그냥 내 만족의 영역이라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보다 훨씬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말했다.
"사진 너무 좋다. 이거 인화해서 내 방 벽에 걸어도 돼?"
순간 멈칫했다. 칭찬이 진심이었구나, 하는 자각보다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나를 참 낮게 보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나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영역에 누군가 불쑥 용기를 건넨 셈이었다. 그 뒤로 셔터를 누르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사진이라는 행위를 기꺼이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깊이 즐기게 되었다.
신기한 건, 받는 쪽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건네는 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해외에서 지내며 유독 힘겨워하던 친구가 있었다. 대단한 위로를 건넨 기억은 없다. 그저 들어주고 내 해외살이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하고, 내가 널 좋아하는 지점들을 이야기 했더니 펑펑 울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했다고?'
생각해 보면 다정함을 건넨 쪽은 늘 이렇게 어리둥절해한다. "나 별거 안 했는데"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그 표정이 참 귀하고도 귀엽다. 어쩌면 세상은 그 어리둥절한 다정함들 덕분에 겨우 살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캐나다에서 지내던 시절, 낮게 깔린 향수병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어느 날이었다. 카페 줄을 서 있는데 앞 순서의 할머니가 내 커피값까지 미리 결제하셨다. 그러고는 뒤돌아 윙크를 하며 말씀하셨다.
"다음에 네 마음이 시키는 날, 너도 나처럼 해보렴."
늘어붙은 잡생각이 한순간에 흩어졌다. 아,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그 뒤로 문득문득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할머니가 내게 준 이 가벼운 즐거움을 슬쩍 흘려보내며 살고 싶다고.
다정함은 건네는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크기가 조용히 불어난다.
길 위에서 마주친 저 노부부의 다정한 초록빛처럼,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누군가의 하루를 데우기도 한다.
나의 다정함도 누군가에게 저런 뒷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가만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