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조건

이방인이었던 계절에 대하여

by Chloe
요즘 한강에 가면 체감상 3분의 1은 외국인이다. 카페에서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주문하는 이들을 자주 마주친다. 유튜브를 켜면 나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넘쳐나고, 외모는 이국적이지만 국적은 한국인인 사람들도 많아진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신기하던 풍경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학교에도 혼혈 아이들이 늘고, 동남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에서, 북미에서 온 사람들이 이 도시의 일부가 됐다.

그 풍경을 보다가, 내가 이방인이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해외살이가 즐거웠다. 배척당한다는 느낌도 거의 받지 못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거기엔 조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키가 큰, 잘 웃는 예쁘장한 동양 여자애인데다 (한국에서 영문학 전공한 덕에) 언어의 장벽도 높지 않았다. 그들은 주눅 들지 않는 캐릭터를 좋아했고, 나는 그 역할에 꽤 잘 맞았다.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종종 부담으로 읽히곤 했다. 거기서는 아니었다. 같은 눈 맞춤이 자신감으로 읽혔고, 그게 편했다.

어떤 날은 한국식으로 꾸미고 나갔다. 또 어떤 날은 후드에 레깅스, 그들과 똑같은 차림으로 섞여 나갔다. 후드인 날은 one of them이 됐고, 꾸민 날은 어딘가 파티걸 같은 애티튜드가 올라왔다. 무의식적으로.

차로 캐나다와 미국 국경을 오가던 때 깨달은게 있었다. 창문이 내려가고, 어디 가느냐, 뭐 할 거냐는 질문이 오면 — 꺄르르 웃으면서 "Girls night!" 혹은 "Shopping :)" 하고 답했다. 그러면 더 묻지 않았다. 거리낌 없는 태도로 웃으면 통과가 쉽다는 걸,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알았다. 미국 국경이 까다롭다는 건, 캐나다 친구가 아닌 한국 친구들과 내려가면서 알게 되었다.


노력이라고 부르기엔 좀 다르다. 그건 감각에 가까운 것이었고, 어쩌면 체질이었다. 거기서 살아남는 일이 내게는 유독 수월했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따금 이민병을 앓는다. 다시 나가 살고 싶다는, 그 막연한 열병.

다만 — 그건 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진 수업에서 '이민 2세들의 삶'을 주제로 취재한 적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만난 그들의 이야기는 내 경험과 사뭇 달랐다. 학교에 한국인이 한 명뿐이면 그 아이는 슈퍼스타가 된다. 이름이 불리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유일하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매력이 된다. 나처럼.

그런데 셋, 넷이 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일함은 사라지고, 마이너 그룹이 생긴다. 말 그대로 — 마이너. 소수의 아무개들. 후드를 입어도 더 이상 one of them이 아니라 "그 애들"이 된다.



취재했던 2세들은 말했다. 학교가 즐겁지 않았다고. 블렌딩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외모가 비슷하면 섞이기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보이지 않는 경계는 얼굴만으로 넘어지지 않는다.

숫자가 경험을 바꾼다. 이방인의 삶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가 아니라, 거기에 같은 얼굴이 몇 명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나의 즐거웠던 해외살이를 다시 들여다보면, 거기엔 능숙함 이전에 운이 있었다. 과에서 one and only 한국인, 아니 동양인이라는, 그 숫자의 운.


그걸 인정하는 건 조금 씁쓸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시선을 돌려 한국을 본다.

풍경은 분명 바뀌었는데, 시선은 아직 그만큼 바뀌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더 배척한다. 예쁜 백인이 아닌 이상,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내가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한 벽 앞에 서는 일이다. 같은 눈 맞춤을, 같은 웃음을, 같은 후드를 입어도 — 통과되지 않는 국경이 있다.

본인들도 이방인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주눅 들었던 순간, 이름이 불리지 않던 복도,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저녁. 그 계절을 지나온 사람들이 왜, 같은 계절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더 차가워지는 걸까.


나는 그 답을 아직 모른다. 다만 이방인이었던 내가, 이방인이 된 누군가의 얼굴을 이 도시에서 마주칠 때 — 그때의 내 표정만큼은, 국경의 창문 너머에서 나를 통과시켜 주던 그 가벼운 미소 정도는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