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를 만드는 사람은 어디서 설레는가
<월간남친>의 미래는 웹툰 PD다. 남들이 설레는 장면을 만드는 사람인데, 정작 자기 설렘은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에서 찾는다. 어라, 이거 내 업계에서 매일 보는 풍경이잖아.
엔터 업계는 도파민을 파는 업계다.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하는 비주얼, 무대, 콘텐츠를 만든다. 그런데 그걸 만드는 사람들의 도파민은 만들고 난 뒤의 뿌듯함에서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다른 곳에서 온다. 남돌 만드는 사람이 여돌을 덕질하고,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이 재즈를 듣고, 아이돌 현장에 있는 사람이 전시와 영화에서 사색하며 본인을 충전한다. 도파민 돌려막기. 이게 왜 그런지 생각해봤다.
업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다. 아이돌은 예쁘고 잘생기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 현장에 들어가면 그 이미지는 금이 간다. 꾸며야 예쁜 사람, 카메라 앞과 뒤가 다른 사람. 취미가 사진인 나로서는 나보다 카메라 앞에서 뚝딱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실망한 순간도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울 리 없다는 것도, 일하기 전에는 몰랐던 거지만.
그 이후로 좋아하는 기준이 바뀌었다. 얼굴이 아니라 프로페셔널리즘. 본인의 몫을 하는가 — 얼굴을 되게 잘 하거나(이건 놓을 수 없지), 노래나 춤을 잘하거나, 끼로 채우거나. 퀄리티를 충족해야 눈에 들어온다. 나는 원래 소위 '멜론탑텐' 취향이 아니라 이 업계에 들어와도 되나 싶은 시간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보는 눈이 객관적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기준으로 고른 픽은 의외로 가장 인기 있는 멤버가 아니었다. 당연히 내 눈에 제일 예쁜 아이가 다른 사람이 봐도 예쁠 줄 알았는데, "그치 객관적으론 이쁜데 심장이 안 뛰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잘난 척 같은 게 깨지는 듯했다. 팬들의 코어 픽 — 온오프 갭이 있다거나, 무대에서 뭔가 다른 게 나온다거나 — 이런 건 처음에 체감이 안 됐다. 마음에 와닿지 않으니까 공식 외우듯 공부했다. 대중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공식으로 배워야 했다는 게, 도파민을 설계하는 사람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업계에서 흔히 보는 패턴이 있다. 자기가 일하는 팀, 자기 회사의 아티스트에게는 의도적으로 팬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 최애 회사는 피하고, 다른 컨셉의 아이돌에게서 도파민을 찾는다. 물론 자기 아티스트의 팬인 채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그게 프로로서 일하는 것과 같은 건지는 늘 의문이다.
이건 단순히 "남의 떡이 커 보여서"가 아니다. 날것을 봐버린 사람의 자기보호다. 카메라 앞의 그 사람과 현장에서의 그 사람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자기가 담당하는 아이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감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일과 덕질 사이에 벽을 세운다. 다른 팀, 다른 회사, 다른 컨셉의 아이를 보면서 — 한 발 떨어져서 "재롱"을 구경하는 감각으로 힐링한다. 몰입이 아니라 관망의 즐거움. 그 거리가 있어야 월요일에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있다.그리고 어쩌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재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알고 싶은 흥미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 ㅡ 덕질이란 원래 그런게 아닌가.
이 경계를 잘 지키는 건 프로의 조건이기도 하다. 속으로 자기 최애와 일하는 아이를 비교하는 순간이 올 수 있고, 그 선을 넘으면 일에 지장이 간다. 일과 취미의 거리를 분리해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업계에서 오래 간다.
쓰고 보니 나는 아이돌이든 함께 일하는 사람이든 프로다워야 호감이 가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게 내 거리두기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업계가 파는 것과 만드는 사람이 찾는 것의 결이 다르다는 것.
엔터가 파는 건 즉각적 자극이다. 비주얼, 퍼포먼스, 팬서비스, 서사 — 심장을 바로 뛰게 하는 것. 그런데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찾는 건 좀 다른 종류인 경우가 많다. 내 경우는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이다. 재즈, 전시, 영화, 뮤지컬, 필름 사진, 꽃. 전부 즉각적 자극이 아니라 역사와 축적이 있는 것들이다. 도파민이라기보다 세로토닌에 가까운 종류의 만족.
그래서인지 내가 만드는 것들도 B급 감성이나 너무 힙한 건 잘하는 사람과 협업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취미가 일에 접목되는 순간이 오면 기쁘다 — 십 년 넘게 취미의 영역으로 치부했던 사진을 이제야 좀 적극적으로 해볼까 싶은 것처럼. 만드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은, 이 업계에서 오래 버틴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업계는 도파민의 순환으로 돌아간다. A사 사람이 B사를 덕질하고, B사 사람이 C사를 덕질하고. 소비자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판타지 산업이지만,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도파민을 돌려쓰는 생태계가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월간남친>의 미래도 그랬다. 클리셰와 클래식의 차이를 가장 잘 아는 웹툰 PD가, 정작 자기 설렘은 가상 남친 서비스에서 시작해서 결국 문법 바깥의 사람에게서 찾았다. 판타지를 만드는 사람은 판타지의 한계를 가장 먼저 안다. 그리고 그 한계를 알기 때문에, 자기만의 다른 충전 방식을 찾아야 살아남는다.
도파민을 파는 사람이 도파민에 면역이 되는 건 직업병이 아니라 직업의 조건이다. 그리고 그 면역 안에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쩌면 이 업계 사람들의 진짜 성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