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거북이. 등딱지가 무겁게 아이패드와 노트북을 넣어 다닌다. 어쩌다 아삼하게 지는 해와 눈을 맞추면. 집으로 집으로. 느긋한 걸음을 옮긴다.
2.
어깨에 진 무게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 투쟁하면 나는 지우펀의 바다를 떠올린다. 얼마 전 다녀온 가족 여행에서. 바다가 싫다는 이모의 투정이에 이모부는 그래서 자신은 바다와 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을 찾는다 하였다. 그때 나는 지우펀을 떠올렸다. 타이페이에서 두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떠날 수 있는 생경한 때깔은 진녹색. 섬나라 대만의 오른쪽 끝. 덩굴이 무겁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눈이 멀 것 같이 푸른 바다가 빛난다. 이모는 바다가 곁에 있으면 우울해 싫다 하였다. 이모는 모른다. 파랑은 심는 동시에 우울을 게워낸다.
파랑보다 맘 가라 앉혀주는 녹색이 좋다. 바다가 싫은 게 아니다. 어쩌면 이모처럼. 지금의 내가 파랑을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3.
대만은 제2의 고향이다. 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유치원생보다 못한 중국어로 대만인이라 소개한다. 체류한 일자는 고작 7개월 남짓. 벌써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의 정서를 붙잡고 늘어지는 건. 대만에서 정착하려던 마음이 외부의 문제로 틀어진 탓이다. 3년 전 오늘. 나는 대만에 터를 놓을 생각을 했다. 한국 마더 에이전시에 대한 기대를 접고. 대만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하려 비행기 표를 끊었을 때에는. 거북이 등딱지처럼 딱딱하게 굳은 스트레스가 무거워. 희망을 낯선 국가에 걸었다.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나는 선글라스를 꼈다. 선글라스를 끼고 본 세상은 어두웠고 선글라스를 벗고 본 세상은 밝았다. 대만 대표와 저녁 약속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나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많은 꿈을 꾸었다.
습하고 꿉꿉한. 끈적이는 습기가 캐시미어 목폴라를 입은 듯 몸에 착 달라붙었다. 낯섦을 낯설지 않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쨍한 Egyptian Blue 하늘. 난잡하게 우거진 열대 우림 덩굴.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대만을 사랑하게 될거라 직감했다. 버건디색 지붕을 가진 하얀 버스가 굴러와 멈췄다. 그 뒤로. 쨍한 햇살을 받은 먹색의 그림자가 넓고 길게 뻗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고 진한 응달 아래로 들어가 캐리어를 구겨 넣었다. 접힌 종이 티켓을 기사님께 건네며 준비한 중국어로 "Xie Xie" 라고 말했다. 기사님의 건조한 입술이 찢어지며 붉은 미소가 피었다. 좌석에 몸을 뉘이면. 무더운 여름 야외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서 풍기는 뜨거운 내가 났다. 가만히 그 냄새를 맡았다.
내가 속한 모델 회사는 서양인 에이전시였다. 아시아인은 매니저들 뿐이었고 서양 모델 가운데 어쩌다 동양 모델 여동윤이 있는 식이다. 3개월 단위로 끊는 워크 퍼밋 특성상 나는 이번 기수의 유일한 한국인 모델이었다. 건너오기 전 패션모델 송경아 님과 가수 황보님의 타지 에이전시 생활을 녹인 책을 읽었다. 동양인끼리 의지했다는 말과 많은 유학파 선배들의 인터뷰를 찾아 마음에 새겼다. 마침 대만 소속사에는 싱가폴 모델이 있었다. 계약서를 쓰러 갔을 때 나는 싱가폴 모델을 만났다. 근육질 몸통 위로 하얀 나시티를 입은 그가 호의적이지 않았기에. 굳이 가까이하지 않았다.
영화 중경삼림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떠오르는 주택 단지. 나무줄기 우거진 1층에 모델 회사가 있다. 전면 투명한 통창으로 하얀 빛이 스며들면, 연노란 정사각형의 타일과 아이보리색 벽지가 빛바랜 톤을 더했고, 나는 그것이 패션 모델이라는 굵직하고 고딕스런 느낌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반 동네 낡은 관리사무소와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언어를 배우는 아기처럼. 짧은 영어와 자신감으로 계약서를 썼다. 한국의 마더 에이전시 실장님과 이메일로 사전에 계약서를 주고받았지만 수기로 남기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 보였다. 싸구려 영수증처럼 생긴 푸른색 종이에 서명을 했다. 중학생도 쓰지 않을 법한 안경을 쓴 매니저가 꾹꾹 눌러 쓰라하여 힘주어 적었다. 옆에서 대표가 생긋생긋 웃었다. 매니저가 푸른색 종이에 덧붙은 노란색 종이를 떼어줬다. 싸구려 노란색 계약서에는 모스 부호처럼 끊어져 읽기 어려운 글자가 남았다. 대표는 엄마 미소를 지었다. 건강한 구릿빛 피부와 어울려 매력적이었다. 대표가 새삼스레 이름을 물었다. Aiden이라 하였다.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영어 이름 말고 대만에서 활동할 중국어 이름을 되묻는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종이를 뒤집어 유치원 아이가 선생님께 자랑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한자 이름을 적어 보여주었다. 어떻게 읽는지는 모른다 말했다. 대표가 이름이 적힌 글씨와 내 얼굴을 두어 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인다. 이윽고 미소가 번지며
"東兒! keyima?(아기 동윤! 괜찮지?)"
라고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차피 나는 영어 이름만 소개할 거니까 그렇다 하였다. 사무실 벽 한 켠에는 공간을 가득 메운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다. 가장 윗단부터 서양 모델 얼굴들이 쭉 나열되어 붙어있었다. 모두 활동중인 이곳 회사의 소속 모델일 것이다. 매니저가 Aiden Yuh (東兒)로 수정된 내 프로필 카드를 프린트해 그들 사이에 붙여놓았다. 핀터레스트에서 본 것 같은 서양 모델들과 같은 위치에 놓인 내 얼굴이 낯설었다. 리븐델에서 엘프를 만난 반지원정대 호빗들과 나는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감격스러워 사진을 찍었다. 대표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거주하는 곳과 정산, 매니저 연락처 등의 세부 사항을 추가로 전달받고 회사를 나왔다. 따땃한 습기가 진공 포장지에 열을 가한 것처럼 몸을 구겨 감쌌다. 대만은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닐만큼 덥고 습하다. 예고없는 장대비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양 하루 종일 쏟아질 때도 있다. 심술궂은 날씨 탓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꾸밈에 가치를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 목 늘어난 빈티지 티셔츠와 주머니가 열매처럼 달린 7부 바지를 입은 거리의 사람들. 햇빛을 쐬러 나온 난닝구 입은 어르신. 나는 그들이 촌스러워 좋았다.
4.
나의 작은 원룸은 초록색 라인. 시아오주딴. 타이베이 아레나 역사 근처 고시원 같은 에어비앤비다. 호스트는 20평쯤 되는 공간에 가벽을 세워 네댓 개의 방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묵은 곳이다. 각방에는 넓찍한 화장실과 50리터 냉장고와 작은 침대와 책상이 있다. 침대와 화장실로 가득 찬 공간이지만 나는 첫 자취에 행복했다. 침대 바로 옆에 난 창문으로 볼펜 똥처럼 작은 개미떼가 선을 그으며 오갔대도 좋은 점만 보였다. 하루 두 번의 샤워를 쾌적하게 할 수 있는 넓은 화장실이 있었고 네댓 방 중 둘만 가진 창문이 내게 있었다. 방음공사가 잘 되어 센치한 밤에 한국어 노래를 흥얼거려도 아무도 문을 두들기지 않았고. 역이던 카페던 할인마트던 모두 가까이 있었다. 개미 떼와 엄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가끔 나를 놀래켰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4층 작은 창 바깥으로 고요함을 즐길때면 이따금 못생긴 새가 창문 옆 전신줄에 앉아 눈을 맞췄다. 근처에 중학교가 있었는지 오후쯤부터 아이들의 대만어 웃음소리가 들렸다. 새와 대만인 아이들의 하교를 제외한 모든 시간은 장판 위를 구르는 솔바람 같이, 느긋하고 조용하게 흘렀다.
생애 첫 자취. 나는 늘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부모님이 보낸 용돈을 달러로 환전해 쓰는 신세였지만 배로 벌어 금의환향하리라 양껏 기뻐했다. 적응을 마치고 가장 먼저 타임 테이블을 루틴화시켰다. 기상은 7시 30분. 눈꼽만 대충 때고 모자를 눌러쓰고 주황색 간판이 매력적인 루이자 커피로 향했다. 꼭 그 시간대에 갓 구워 따스운 크루아상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만인들 사이 어딘가 앉아 줄 이어폰을 귀에 꽂고, CNN 뉴스를 틀었다. 무시무시한 영문 단어들이 두 귀를 뚫었다. 30분간 뉴스를 듣고 중국어 공부하는 앱을 켜 필사했다. 공책을 덮으면 눈 앞에 화상 입은 지렁이 같은 붉은 실선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매일 아침 두 시간. 아침 밥과 동시에 1차 중국어 공부를 끝내도. 하루 중국어 공부는 스케쥴에 따라 3에서 5차까지 있었고. 그것은 일이 없던 첫 대만 모델 3개월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다. 이곳에 도착하고 며칠간. 밥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에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금방금방 시간 태울 수 있는 공부와 오지 않는 소속사의 일감 연락을 기다리는 것뿐. 고독을 실감할수록 크루아상 버터 내가 가득한 루이자 커피를 찾는 시간도 빈번해졌다. 달리 갈 곳도 없었다. 밤에는 시내 근처 코끼리 산에 올랐고 일주일에 한 번 치팅데이로 지우펀에 가는 것 외에는 오로지 카페였다. 나는 루이자 커피에 2층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좁은 1층에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유치원생처럼 중국어를 지껄이는 한국인이 안쓰러웠는지. 아르바이트하던 친구들이 2층에도 자리가 있다며 알려줬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중국어 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트에 가득 적힌 중국어를 알아보기 힘들어 색연필을 썼다. 나는 한국을 생각했다. 외로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대만인의 얼굴이 한국인으로 보였다.
루이자 커피 직원은 모두 검은색 유니폼을 입었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그들의 앳된 얼굴은 내 또래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 같은 중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어느날. 나도 모르게 툭 내 이야기를 던졌다.
"Ni Hao. 여기 이사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그들은 고장난 로봇처럼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은 영어를 못했고 나는 중국어를 못했다. 우리의 대화는 성립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카페에 갈 때마다 말을 걸었다. 일이 없는 하루 중 유일하게 상대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답답한 대화 시간은 한 문장씩 늘었다. 과일 따위를 이해시키기 위해 대학 전공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오른손에는 연필이 왼손에는 구글 번역기가 켜진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중국어와 영어를 섞으며 새로운 대화법을 익혀갔다.
오전 시간대 근무하는, 연인이 아닌 두 남녀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독립적인 그들은 독립적인 나를 좋아했다. 그들이 부모의 지원을 거부하고 혼자 살며 경제 활동을 하듯. 타국에 넘어와 패션모델 일하며 분투하는 어느 일본 청춘만화 주인공을 떠올린 모양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씨티은행에 들러 부모님이 보내준 용돈을 꺼내야 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해준 두 직원 친구 덕분에 현지인만 아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더 이상 아침 식사를 크루아상으로 때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현지 대만인은 커피점에서 아침을 먹지 않는다. 첫 자취 뽕에 취해 모닝커피와 빵을 먹었지만, 크루아상보다 싸고 든든히 해결할 수 있는 요깃거리를 파는 집이 도처에 있었다. 친절한 루이자 커피 남자 알바생이 물었다.
“Aiden은 크루아상을 좋아해?”
나는 양 볼 가득 크루아상이 들어 있었기에 입을 다문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80 NTD(한화로 삼천원)로도 먹을 수 있는 게 많아 Aiden. 소개해줄게”
대만의 거리는 미국처럼 블록화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종과 횡으로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단지의 양끝 모서리에는 상가가 붙어있었다. 넓고 편평한 도로와 상가의 복도는 영화 "중경삼림" 속 경찰 663과 페이의 스낵바 같은 오래된 상점들로 이어진다. 빈티지 가게에서나 볼 법한 포스터. 녹슨 간판엔 붉고 기다란 중국어 필기체가 만연하다. 교외에서나 팔 법한 유행 지난 옷, 가전제품과 절인 오리들이 커다란 통창 앞에 놓였다. 높은 층고의 상가 복도에는 난닝구를 입은 대만 어르신들과 늘어난 옷을 입은 청년들이 걸어다녔다. 나는 정든 긴 복도를 친절한 루이자 친구들과 함께 처음 걸었다. 그들은 중국어와 영어가 섞인 서툰 대화법으로 자신의 동네를 이해시키려 애썼다. 나 역시 서툰 중국어와 영어로 그들이 설명한 것을 되물으며 노력했다. 우리네 인상은 잔뜩 구겨져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헌신과 사랑은 유대를 부른다. 난생처음 본 굳힌 두부가 들어간 어죽. 끈끈한 점액질의 청경채와 짭조름한 팥죽색 오리 고기를 먹었다. 새로운 식사는 아침에 포만감을 주고 그들의 관심으로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친절한 두 루이자 알바생과 걸은 길을 다른 대만인들과 걸었다. 옆 방 폴란드 대학원생과 자전거를 탔고, 옆 방 대만 패션 대학생과 걸었다. 운동하다 밥을 먹다 커피를 마시다 생기는 대만 친구들이 점점 늘었고. 더는 외롭지 않았다. 친구들과 식사를 하지 않는 날에는 한국 음식점을 찾았다. 돌솥비빔밥을 주로 먹었다. 돌솥에 들러붙은 짭조름한 누룽지를 긁어먹을 때 말고는. 한국을 그리워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5.
바다가 보이는 지우펀 절벽 위 골목에서. 나는 거북이를 보았다. 바위 같은 등딱지가 짓눌러도 상관없다는 듯. 느긋한 걸음을 옮기며. 그는 이곳 산 중턱부터 바다까지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한 발짝 한 발짝. 깊이 박힌 뿌리라도 뽑는 듯 다리를 버벅이며. 제 높이에선 보이지도 않을 바다를 향해. 거북이는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