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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동윤 Jan 15. 2021

프리랜서에게 공개한다는 것

어느 배우 지망생 작가의 일기

저녁사이 눈이 많이 내렸다. 목도리를 두르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 하얀 거리를 걸었다. 눈 결정이 바스라지며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지면을 딛는 건 여전히 행복한 일이다. 잠자던 강아지를 데려 나갔다. 강아지는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 그래서 눈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신나서 달렸고. 기뻐하는 모습이 애틋해 영상에 담았다. 오래 기억해야지. 겨울이 왔다.


어제는 인터뷰를 했다. 드러내는 시간. 에디터님과 포토님, 그들과의  시간이 오로지 나에 달린. 어색한 음과 생각 지우는 동안 에디터는 녹음기를 켰다. 무심코 꺼낸 근사한 말도 의도치 않은 실수도 모두 저 작고 검은 기기에 담길 것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티내지 않으려 꾹꾹 눌러 말했다. 내심 좋았다. 지면으로 인쇄됨에 부담은 있다만 아무렴. 책임감도 커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 없을 내 이야기, 이것을 언제 또 꺼낼 수 있을지 하여.

 


작년 11,  개인전을 열었. 간간히 그려오던 녀석을 전시했다. 떠오르는 이야기를 무작정 그리던 놈이 전시를 했. 추상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칸딘스키가 말했다이유란. 짙은 남색 단면이 왼쪽에 있는, 남녀가 남색과 아이보리 배경 경계에 위치한, 왼쪽 상단에 있는,   하얀 오브제가 기대듯 앉아 그것을 바라보는. 색상, 명도, 채도, 위치, 매체, 굵기, 질감. 미술인의 당연한 이런저런 무서운 이론들이 나를 압도한다. 공부를 해도 어려운 그것. 용어를 나의 언어로 씹어내지 못하는 나는 허세로 가득찬 초짜 작가다.


나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하는 위기감이 든다. 나는 자의식 우물에 갇혀 좁고 둥근 하늘을 바라보는 개구리처럼 기다려왔다. 하지만 우물 안을 내다보는 수고를 기꺼이 해줄 사람은 없었고. 연기던 그림이던. 결과에 당당하려면 부딛치고 깎여야 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찬란한 시간들을 숨어지내는 줄도 모르고 방관했나. 생각을 집어삼키는 어둠과 거품 속에 살며 또 얼마나 많이 아파했나.


개인전은 발단이었다.


12월에 책을 냈다. 실용서를 가장한 에세이다. 부분부분 짧막한 내 이야기가 있다. 달랑 일곱 꼭지 정도 글을 담았을 뿐인데, '내가 뭐라고.' 걱정이 도졌다. 또 다른 자아가 경고한다. '너는 책을 내고 부작용을 앓을거야. 어설픈 글이 세상에 발가벗겨져 골머리를 앓을거야.' 하지만 이미 텀블벅 통해 펀딩을 채웠고 책을 전달해야만 했다. 스스로 채운 족쇄 덕분에 책이 세상에 나왔다. 처음으로 나의 불온전한 생각이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글은 기록이다. 기록은 영원하다. 영원히 남는다는 부담감에 인스타에 글 하나 못 남기던 나였다. 그리고 막상 세상에서 가장 못된 생각을 가진 나의 책이 나왔는데. 세상은 바뀌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 이게 뭐라고 그동안 세상을 겁내며 살았던가.


몇 달이 지나도 달라진 건 없다. 관종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엄습해도 평상시 온도와 차이는 없다. 문장에 작은 압박이 생겼다. 나는 더 메모하고 기억하려 애쓴다. 글을 쓴다. 건강한 옭맴. 갓태어난 작가가 할 일은 묵묵히 쓰고 그리며 네 할 일만 잘 하는 것. 이제 대부분의 글을 공개한다. 삶을 확장시키리라. 맘에 갇혀 살지 않으리라. 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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