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내가 요리사
“쫄면 해줄까?”
엄마는 어떻게 나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내는 걸까? 거실 소파에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던 나는 엄마의 제안에 “좋아!”라고 대답하고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가 손을 씻는다. 엄마와 나는 오래된 쫄면 메이트다. 나와 쫄면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엄마가 데리고 간 ‘보리밭’ 분식집에서 이루어졌다. 장날에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가면 엄마는 평소에 잘 안 사주던 간식거리를 사 주셨다. 갓 튀긴 꽈배기나, 게맛살이 들어간 핫바, 천 원짜리 미니피자 등등. 아주 무덥던 여름의 어느 장날, 그날 엄마는 처음으로 나를 중앙통 보리밭 분식점에 데려가셨다. 선풍기 바람이 제일 잘 드는 곳에 나를 앉힌 뒤, 엄마는 쫄면 하나와 고기만두 하나를 주문했다. 먼저 나온 고기만두를 서투른 젓가락질로 먹고 있던 나는 엄마의 쫄면이 나온 순간, 그릇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양배추채, 콩나물, 오이 몇 조각과 계란 반쪽 그리고 빨간 양념장이 동그랗게 올라가 있는 쫄면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엄마가 능숙한 젓가락질로 양배추채 하나조차 흘리지 않고 쫄면을 비비기 시작하자 뒤이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퍼져왔다. ’ 너한테는 매울 텐데?’라는 엄마의 경고를 뒤로하고 나는 홀린 듯이 엄마의 쫄면 한 젓가락을 뺏어 먹었다. 처음엔 ‘하나도 안 매운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곧 입이 매워 어쩔 줄 몰랐다. 매운 입을 달래려고 쫄면과 함께 나온 뜨거운 장국을 몇 숟갈 떠먹었지만 장국은 매운 걸 가시게 하기는커녕 가뜩이나 매운 입 안에 저릿한 자극을 더할 뿐이었다. 나는 고기만두에 단무지 두 개를 얹어 한참을 씹은 후에야 가까스로 매운 기를 없앨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엄마가 시킨 쫄면 두 젓가락을 뺏어 먹는 데 성공했다. 물 한 통을 거의 다 비우며 새빨개진 얼굴로 엄마의 쫄면을 뺏어 먹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며 웃느라 얼굴이 새빨개진 엄마. 우리 둘은 그날부터 새빨간 쫄면 메이트가 되었다.
서울 자취방에서 처음으로 혼자 쫄면 만들기를 시도한 날, 쫄면이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란 걸 처음 알았다. 우선 쫄면을 마트에서 사 와야 하고, 사온 면을 가닥가닥 뜯어야 하고, 무엇보다 더운 날 불 앞에서 면을 삶아야 한다. 특히 쫄면은 그 성질이 고약해서 파스타나 라면이랑 달리 삶는 동안 꼭 앞에 지키고 서서 한 번씩 저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다 익은 면을 채반에 쏟아낼 때, 바닥에 눌어붙어 타 버린 면을 보게 된다. 면을 다 삶으면 양배추를 채쳐야 하고, 계란도 따로 삶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오이도 좀 얹어 주고. 이런 과정을 생각하고 나열하다 보면 ‘음 역시 그냥 먹지 말자.’ 하고 포기하게 된다. 내 경험상 쫄면을 위해 산 양배추는 며칠 지나면 검게 변해 갈 것이고, 남은 오이는 냉장고에서 잊힌 채 두 달쯤 지나서 액체와 고체 사이의 고약한 형태로 발견될 것이다. 그럴 바엔 사 먹고 말지 생각하고 김밥천국에 가지만 쫄면 한 그릇이 9천 원에 육박한다는 건 아직 내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격이다. 결국 기껏 분식집에 가서도 쫄면 말고 다른 걸 시켜 먹고 나온다. 그렇게 쫄면은 내 돈 주고 사 먹기는 아깝고, 내 손으로 해 먹기는 귀찮은 음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집에서 쫄면을 만든다면 얘기가 다르다. 관록 있는 쫄면 메이트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서로 각자 해야 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엄마가 면 삶을 준비와 양배추 등 야채 손질을 하는 동안, 나는 냉장고 맨 아래 야채칸을 열어 엄마가 미리 사 둔 쫄면 사리를 꺼낸다. 식탁 위에 키친타월 두 장을 펴고, 그 위에 쫄면 덩어리 두 개를 꺼내 가닥가닥 뜯어낸다. 눈은 엄마가 켜 둔 티브이에 고정한 채로 ‘올해 복숭아 되게 비싸네.’ ‘오늘은 저녁에 엄마랑 밥 먹고 마트 한번 들러야겠다.’ 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 와중에도 손을 쉼 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쫄면을 떼고 있으면, 어느새 계란 삶기까지 마친 엄마가 내 등 뒤로 다가와 ‘그렇게 떼서 오늘 안에 먹겠냐’는 말과 함께 남은 쫄면 덩어리를 대충 손바닥으로 비벼 부엌으로 가지고 가 버린다. 엄마가 면을 삶는 동안 나는 고추장, 식초, 매실청, 간장 조금을 넣어 쫄면 양념장을 만든다. 마지막에 엄마가 대충 비빈 쫄면은 백발백중 면의 맨 끝 부분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딱딱한 덩어리가 되는데, 우리 집은 그걸 쫄면 쫀드기라고 부른다. 지난 주말의 쫄면에서도 어김없이 만들어진 쫄면 쫀드기를 질겅절겅 씹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밖에서 사 먹는 쫄면이 성에 안 차는 건 이 쫄면 쫀드기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엄마가 해주는 쫄면은 파는 쫄면과 달리 온갖 재료들이 함께 들어간다. 어느 날은 배추김치를 쫑쫑 썰어 깨와 참기름으로 버무린 것을 같이 넣을 때도 있고, 잘 익은 열무김치가 있는 날엔 그걸 넣기도 하고, 어중간하게 남은 부추무침 같은 것을 넣기도 한다. 면만 쫄면을 쓸 뿐, 비빔국수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쫄면은 쫄면이고 국수는 국수다. 쫄면이 매끄럽게 입 안으로 쪽 빨려 들어와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갈 때까지. 그 탱탱하고 쫄깃한 면의 식감과 우물거리며 입 안이 꽉 차는 느낌. 그냥 소면은 절대 쫄면을 따라올 수 없다.
‘역시 쫄면은 엄마랑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최고야.’
쫄면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쫄면 해줄까?”하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효녀일 텐데, 나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나한텐 눈에 안 보이는 효도를 하는 것보다 아는 맛을 거절하는 게 더 힘들다. 나는 아직 효녀가 되려면 멀었다. 이번 주말엔 엄마를 꼬셔서 쫄면 한 그릇을 같이 만들어 먹어야겠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엄마 내가 쫄면 해줄까? 엄마는 면만 떼서 줘! 내가 다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