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2 알맞게 나누기

생일을 기념하며

by Anavrin

내 생일은 3월 23일이다.

나는 내 생일을 이루고 있는 숫자들을 좋아하는데, 3월 23일을 따로 쓰면 3도 소수, 23도 소수라 좋고. 323을 붙여 쓰면 17과 19라는 연속하는 두 홀수의 곱이면서 동시에 연속하는 두 소수의 곱으로 이루어진 값이라는 게 좋다. 또 323은 거꾸로 써도 323이라 좋다. 지금은 이렇게 좋아하는 내 생일 날짜이지만, 처음부터 내 생일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내 생일이 3월에 있는 게 싫었다. 3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고, 23일은 새 학기가 시작된 지 겨우 3주가 지났을 때라 내 생일을 말하기 겸연쩍었다. 그렇게 4월, 5월, 6월쯤 되어 새롭게 친해진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해 줄 때, 가끔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어? 너는 생일이 언제야?”

그러면 난 늘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내 생일 이미 지났어. 나 3월이야.”

“아 진짜? 아쉽다. 대신 내년 생일 꼭 챙겨줄게!”

그리고 내년이 되면 각자 새롭게 만난 반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느라 바빠지기 마련이라 내 생일 같은 건 또 어영부영 잊힌다. 그렇게 내 생일을 챙겨주는 내년은 영원히 오지 않는 내년이다. 그것에 대해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다행이라는 기분이 더 컸다. 나는 남에게 무언가 받는 게 ‘많이’ 불편했다. 과거형으로 말하니 지금은 안 불편하다는 의미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불편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 생일과 가까운 절기에 ‘나눌 분’ 자가 들어간 게 공교롭다. 내 생일은 춘분의 다다음 날쯤 된다. 춘분은 원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때를 정해둔 것이라는데, 실제로는 춘분에도 낮이 조금 더 길단다. 그럼 춘분에서 2~3일이 지난 내 생일은 무조건 낮이 밤보다 길 터이다. 참 나와 비슷한 날에 태어났구나 싶다. 절반으로 밤과 낮을 나눈 척하는 춘분처럼. 나도 늘 어느 한쪽이 기울어진 상태면서 절반을 딱 나눈 척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내 것을 줘 버리는 것은 너무 쉽지만, 내 몫을 남기면서 남에게 ‘나눠’ 주는 것은 너무 어렵다. 차라리 내 몫을 포기하고 남에게 홀랑 통째로 다 줘 버리는 게 속 편하다. 웃긴 사실은 그렇게 내 마음 편하자고 모든 걸 다 줘 버리고 난 다음에 상대방의 마음이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의 반의 반도 못 따라오는 것 같을 때, 나는 그럴 때마다 이미 줘 버린 마음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는 마음이라 줄 사람에게 온전히 다 줘 버린 게 가장 좋은 선택임에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그 불공평함에 나는 속이 상한다.




한때는 주지 않고 버티는 것을 시도해 본 적도 있다. 안 주고 안 받기. 그래서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기. 그렇게 한다면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오만이었다. 안 주고 안 받는 관계는 내게 영원히 상대방에게 닿을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혼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내가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로 이렇게 거리를 두고 있어도 되는 걸까?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건 나 아닌가? 이렇게 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결국 또다시 줘 버리는 선택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소수를 좋아한다. 자기 자신과 1 말고 다른 약수가 없는 숫자. 단 두 개의 숫자의 곱으로만 이루어진 숫자. 나눌수록 여러 약수들로 조각조각이 나 버리는 여느 숫자들과 달리 나눌수록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숫자.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어떻게 하면 소수처럼 스스로를 지키며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내 것을 너무 못 지키는 것도 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준 것에 대해 기대를 갖지 않는 삶이 어디 쉬운가.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에 대해 곱씹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그저 조금씩 조금씩 내가 더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고, 내가 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뒤통수나 한번 긁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차피 불편할 마음이라면, 잊을 수 있는 정도로만 주고 최대한 잊으려 애쓴 뒤 적어도 나는 최선을 다 했다는 핑계 뒤로 숨어버리는 게 지금까지 내가 시도해 본 이런저런 방법 중에서 가장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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