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녀 또는 당신의 이야기 <01>
그녀는 지독히도 외로움을 타던 사람이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웃고 떠들다
어느새 늦은 저녁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떠나게 되면 무언가에 쫓기듯 핸드폰을 들고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연락처를 보고 또 보다 ㄱ에서 ㅎ으로 이내 영어와 특수문자가 나타날 때까지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전화를 하며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하고싶지 않기도 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도착하기 까지의 시간동안의 통화였으니까. 방에 도착하면 그 섣부른 통화와 대화가 너무나 귀찮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지만 동시에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버스창가에 앉아 옆에 아무도 앉지 않기를 바라며 창밖을 보았다.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들의 빛이 마치 고양이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는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일부터 당분간은 약속이 없으니 밖에 나올 일도 다른 사람을 만날 일도 없을거라 생각하니 퍽 우울해졌지만 동시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즐거움도 고갤 들었다.
'내일은 오랫만에 은행엘 가고, 치과도 예약해야겠다.'
사랑니 때문인지 왼쪽 뺨이 욱신거렸다. 익숙한 정류소에서 내려 떠나는 버스가 만든 바람과 매연에 휩싸여 집으로 걸어갔다. 다시 연락처를 보며 다시 ㄱ에서 ㅎ으로 이름들을 훑어보며 집으로 향했다. 전화를 걸 마음은 있었지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