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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vrin Jul 20. 2015

감정의 조각들

그, 그녀 또는 당신의 이야기 <02>

그와 그녀는 이제 그만 이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억울했다. 

단 한번도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연락을 했던 적도 없었다. 딱히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동성인 친구들과도 자주 놀지도 않았다. 그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게임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술 때문에 실수하는 친구들을 보며 한심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술자리를 좋아했다. 딱딱한 표정으로 마음 속 얘기를 좀처럼 하지 않던 사람들도 술이 들어가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온갖 이야길 쏟아낼 때마다 그녀는 그 사람과 진정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집에 있는 것보단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그를 사랑했지만 둘은 서로의 다른 점까진 사랑하지 못했다.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는 남자친구를 어디 밖에 나가서 사고칠 걱정이 없어 좋다고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사회생활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지켜보며 슬슬 그에 대한 한심함과 불편함이 피어올랐다. 


싸움에서 늘 혼나는 쪽은 그녀 쪽이었다. 

왜 연락을 늦게 했는지, 술자리는 왜 이리 잦은지, 꼭 남자인 사람들이  함께했어야 했는지...

마음이 여렸던 그녀는 싸움을 피하기 위해 그를 달래며 사과했지만 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 

사과를 하고 난 뒤에도 그녀는 너무나 약속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쳐갔다. 그가 지치는 만큼 그녀도 지쳐갔다. 

서로가 너무도 지쳐 더 이상 배려를 할 수가 없던 그날 밤,

그들은 이제껏 해본 적 없는 싸움을 했다. 

소리를 지르며 집안의 온갖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서로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지만 그 뿐이었다.

그날은 지붕을 뚫을 듯 내리는 비와 천둥 번개가 치던 밤이었다.

그 비처럼 서로의 감정을 모두 쏟아냈다.  

더 이상 뭐라고 대꾸할 힘도 남아있지 않을 때 

그가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지만 거절의 의사는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별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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