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vrin Oct 28. 2015

감정의 조각들

그, 그녀 또는 당신의 이야기 <03>

제법 쌀랑해진 바깥을 천막 하나로 막은

후끈후끈한 포장마차 속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나한테 그 사람은 뭐랄까

센서등 같은 사람이었어"


"?"


내가 도저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하하 웃으며 술잔을 넘겼다


"내가 정말 많이 생각해 봤는데 정말 엄청나게 적절한 표현인 거 같아.

센서등 같은 사람이었어 그 사람은.

왜 다들 현관이나 계단에 센서등을 달잖아?

가까이 가면 팟 켜졌다가 스스로 꺼지는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내가 다가갔기 때문에 불을 켠 거야

스스로 불을 키려는 의지가 있던 게 아니라

내가 다가갔기 때문에...

그리곤 불이 켜진 걸 보고 안심하고 있던 내가

가만히 그에게 기대려고 하니까 불을 끈 거야.

나는 그의 빛을 받으려고 움직이고 또 움직였지.

그리고 끝내는 춤을 추다시피 몸부림을 쳤어

이렇게까지 하면 그의 불이 꺼지지 않을 것 같았거든.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어.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게 중요했지.

그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나는 한시도 멈출 수가 없었어.

내가 지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여력이 없어 어둠 속에 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된 거지

바깥 가로등은 묵묵히 켜져 있는다는 걸. 바보 같은 짓이었어. 나는 그 알량한 불빛에 눈이 멀었던 거야

생각보다 어둠이 짙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어."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고,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서 지금 후회해?"


"아니, 난 단 한 번도 내 선택을 후회한 적 없어.

그냥 그런 사랑도 있는 거겠지 누군가는 그 불빛 아래에서 쉬지 않고 춤을 출지도 몰라. 

다만 그게 내가 아니었을 뿐. 그러는 넌? 내가 한심해?"


"아니, 그럴 리가. 오히려 그렇게 정확한 비유를 했다는 것이 기특할 지경인걸."


"맞아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엄청난 비유였어."

작가의 이전글 감정의 조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