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헌신적인 사랑
사랑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제 아무리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랑에 빠지면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위해 사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뭘 해주면 기뻐할지 등등 몸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게 된다.
사랑을 하면서 무언갈 베풀게 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이미 내 눈과 마음이 그를 쫓는다. 하지만 이러한 베풂이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 사람과 내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손이 닿으면 심장이 저릿하여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한마디로 연애 초창기엔
불확실한 상대방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라도 무조건적인 사랑과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난다.
하지만 이땐 나 혼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그러한 생각을 한다.
이때마저 모든 것을 다하는 연애를 하지 말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별 이야긴 하지 않겠지만,
문제는 다음부터다. 이리도 열렬하고 뜨겁던 사랑의 불길이 꺼지고 난 뒤에
우리는 흔히 말한다.
'사랑이 식었어'
'변했어'
'옛날 같지 않아'
그럴 수밖에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 잡힌 고기가 되었고 처음의 그 환희와 기쁨은 시들어진지 오래인데
옛날만을 생각하며 오랜 기간을 연애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고역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쯤에서 우리는 잊어버린 이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애초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주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받기만 하는 관계도 역시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부모도 아니고 보호자도 아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보자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마음을 주고받기 위함일 것이다.
주기만 하는 연애가 익숙해지거나 받기만 하는 연애가 익숙해지면
어느새 동등한 위치에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헌신과 희생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이런 관계는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들어버리지만
한편으론 그동안의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 헤어짐조차 어렵게 만든다.
마치 등나무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감정들 속에서 한없이 지쳐가는 것이다.
조금 냉정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을 주어야 하고
돌려줄 수 있을 만큼의 사랑만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 정도가 칼로 잰 듯이 정확히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많을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의 선에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받는 것 그 어느 것도 당연히 여겨선 안되지만.
사랑을 주는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