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쩌면 이번이 우리가 만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다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도 했어. 나는 깜짝 놀랐어. 네가 지쳐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 우리는 1년만에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지. 너는 나를 보면 꼭 거울을 보는 것 같다고 했어. 너와 꼭 닮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지.
거울을 보면 거울속의 너도 너를 바라본다는 걸 알아? 나 역시도 그랬어. 너를 보고 있으면 나도 꼭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 거울 속의 너는 나 나는 너. 그렇게 서로 닮은 두 사람이 서서히 닳아가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어. 너와 만나던 날 내가 만든 비누를 선물이라며 네 손에 쥐어주며 말했지 ‘우리 이거 다 쓸때까지는 같이 좀 더 견뎌볼까?’ 자신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던 너는 비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어.
왜 하필 비누였을까?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러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세상 모든 일이 합리적인 건 아니잖아. 모든 것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너에게 초를 선물로 주고 싶지는 않더라. 초와 비누 둘 다 스스로를 조금씩 녹여 가면서, 스스로를 잃어 가면서 남을 위한다는 점은 같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촛불은 너무 비장해. 그 모습조차 너에게 또 다른 짐이 될 것 같아 그래서 비누를 택했는지도 몰라. 솔직히 이제와 이유를 만들어 붙여보는 중이야.
너는 비누 같아. 조용하고 묵묵히 네 역할을 다 하고 사라져버려. 촛불은 가끔 큰 불을 내기도 하고 사람들을 다치게 할 줄도 알지만 비누는 그렇지 않잖아. 가만히 가만히 밀려드는 물들에 자신을 녹이며 거품을 내는 게 전부잖아. 그리고 그 거품도 오래지 않아 사그라들지. 인어공주가 결국 왕자님을 죽이지 못하고 바다로 몸을 던졌을 때 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
모든게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부질없다는 말의 어원을 생각해. 그거 알아? 부질없다는 불질없다에서 파생된 말이래. 먼 옛날, 대장간에서 단단한 쇠를 만들기 위해선 불에 달구었다 물에 담그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지나지 않은 쇠는 물렁하고 쓸모가 없게 된다는 거야. 지금이 그런 시간이 아닐까?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그렇게 부질을 견디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조금 더 초연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아직 말랑한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함께라면 조금 더 견뎌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물렁한 비누들이니까. 비누는 원래 쓰다가 더 이상 거품이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되면 새 비누 등에 헌 비누를 붙여 쓰곤 하잖아. 우리가 서로의 등에 붙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견디자.
어쩌면 이건 내 욕심일지도 몰라. 그치만 너와 이렇게 일찍 헤어지고 싶지 않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 같은건 좀 더 뒤로 미뤄졌으면 해. 차라리 예기치 않은 이별이었으면 해. 이별을 정하고 만나는 건 너에게 견딜 수 없이 외로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