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왜? 아니 무슨 일 있었어?"라며 놀라는 사람
"아 부러워. 나도 서울살이 그만하고 싶어."라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
"안돼. 서울 한번 벗어나면 끝이야. 너 이제 다시 서울 못 돌아와."라며 나를 말리는 사람까지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지만
그 말들 속에 있는 감정은 나에 대한 걱정이라는 게 느껴져 모두에게 감사했다.
그동안 인생 헛 살아온 건 아니군, 으쓱한 마음까지 들었다.
서울생활을 그만 두기로 한 건 뭐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거나 한 건 더더욱 아니고.
내가 처음 서울에 살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지방에서 나고 자란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인서울'학교에 대한 열망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대학교 합격과 함께 시작한 서울생활은 참 어려웠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갑자기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삶을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건
구명조끼 하나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로 바닷물에 던져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그 말을 되뇌면서 지금의 고통이나 외로움은 당연한 거라고,
이걸 견뎌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지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내가 서울에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데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여전히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거지?
퇴근길, 한 시간째 강변북로에 갇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9711번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이 생각을 했다.
그날따라 퇴근길 정체가 심각했고, 내 가방에는 노트북이 있었으며, 생각할 체력이 남아 있었다.
나는 곧바로 버스 안에서 '내가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적어보았다.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내가 '반드시'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한참 생각해 봤지만 이유라고 겨우 떠올린 것들도 구색을 갖추지 못한 핑계처럼 느껴졌다.
1.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다. --- 서울에 살고 있는 지금도 시간을 못 내서 못 간다.
2. 친구들이 많이 있다. --- 친구들도 매일 만나는 건 아니다. 주말에 겨우 시간 맞춰 보는 게 전부다.
3. 일자리가 있다. --- 사무직이 적성에 안 맞는데 계속 이 회사에서 버티는 게 맞나? 정말로?
4. 연애를 할 수 있다. --- 지금도 안 만나는 주제에.
...
이유를 써 내려갈수록 명확해지는 결과는 하나였다.
'굳이 서울에 살 이유가 없다.'
아주 깔끔했다.
애초에 서울에 살 이유가 있어서 시작한 서울생활이니, 이유가 없다면 지속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2025년 말, 서울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계기라는 건 정말 사소한 것이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줄 아는지가 중요할 뿐.
퇴근길엔 9711번 버스 오른쪽 창가 자리에 자주 앉아 바깥을 바라보고는 했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건물들을 바라보면
'아직도 집에 가지 못한 누군가가 있는 거겠지.' 생각하곤 했다.
이제는 고층빌딩이 아닌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지낸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