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 살았을 때는 문화가 있는 수요일(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맞춰
반차를 쓰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가거나
(입장료가 비싼 것도 아닌데 무료로 관람한다는 기분이 좋았다.)
퇴근한 뒤 영화관에 가 영화를 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엔 영화관조차 없다.
문화생활 때문에 서울을 못 떠나겠다는 말이 엄살이 아니구나 싶다.
새벽 수영을 다녀오는 길
집을 나설 땐 어두워서 잘 못 읽었던 현수막이 그제야 눈에 띄었다.
시에서 문화가 있는 수요일을 맞이해 클래식 공연을 무료로 진행한다는 홍보문구가 쓰여 있었다.
온라인으로 선착순 모집을 한다는 설명에 서둘러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공연 일주일 전인데도 내 걱정이 무색하게 자리는 넉넉히 남아 있었다.
(이런 건 참 좋다. 서울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나는 내 것과 부모님 것. 그렇게 티켓 3장을 예매하고 공연 날을 기다렸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은 380석 남짓의 아주 작은 국악당이었다.
당일 선착순으로 표를 배부한다는 문자를 받아 내가 먼저 가 표를 받아두기로 했다.
표를 받고 부모님을 기다리는 동안 클래식 공연을 보는 게 처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훈아 콘서트, 조용필 콘서트 등 일반 가수의 콘서트는 몇 번 보내드린 적이 있었지만,
클래식 공연은 얘기가 또 다른데.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공연 20분 전 만난 부모님에게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속사포처럼 주의사항을 쏟아냈다.
"핸드폰 매너모드, 아니 잠깐 꺼두자. 아빠 갤럭시워치도 꺼. 절대 중간에 촬영하면 안 되고, 대화하는 것도 안돼. 알겠지? 화장실 가고 싶으면 허리 숙이고 최대한 조용히 다녀오고. 중간에 나갔다 들어오는 거 안될 수도 있으니까 미리 물어볼게. 그리고 혹시라도 나갔다 돌아오면 티켓 다시 확인할 수도 있으니까 이거 한 장씩 꼭 가지고 있고."
숨 쉴 틈 없이 내 할 말을 다 쏟아내고 나자 엄마가 작게 손을 들고 나에게 물었다.
"사탕 한 개만 얼른 까먹으면 안 돼?"
"취식 금지라고 쓰여 있잖아. 안돼."
"조용히 먹을게. 지금 빨리 뜯어서 먹으면 되잖아."
엄마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안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꼭 조용히, 그리고 공연 시작 전에 먹겠다는 다짐을 받고 그러라고 했다.
그날의 공연은 내가 걱정한 것만큼 경직된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 같이 환호하고 손뼉 치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 더 가까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사탕을 먹어도 되냐는 허락을 받던 엄마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히려 내 당부들 때문에 부모님이 공연을 제대로 못 즐기게 된 건 아닐까?
불편한 죄책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부모님과 나의 관계가 역전된 것 같다고 느끼는 날이 많다.
절대 수상한 전화는 받지도 말라거나
문자에 있는 링크 같은 건 눌러보지도 말라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뉴스 같은 걸 읽지 말라거나하는 걸 내가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땐 부모님이 나에게 그런 걸 가르쳐 주었는데.
이제는 내가 부모님에게 A부터 Z까지 잔소리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내 눈치를 보면서 이거는? 저거는? 하나하나 물어보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건 마음이 불편하다.
이번 공연도 그랬다. 부모님이 개념 없는 관객처럼 보이면 어쩌나 우려하며 이것저것 금지했지만,
그런 우려 때문에 오히려 내가 부모님에게 개념 없이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라지만 자식인 나도 이번생이 처음이라 (내가 기억하는 한)
어떤 식으로 지금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하는지 어렵기만 하다.
우선 지금의 목표는 부모님에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줄이기로 했다.
PS. '하면 안 돼라는 말을 하면 안 돼.'라는 문장을 혼자 생각하면서 큭큭 웃었다.
언제 또 이 목표가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과 행복하게 오래 살기 위해선 노력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