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무늬 자동차를 가지게 된 날
2월의 첫날
나는 2월이 되자마자 차 사고를 냈다.
다행히 다른 차나 사람을 친 건 아니고
가만히 있는 전봇대와 접촉사고를 냈는데,
그 차는 아빠 차였다.
아빠 미안.
원래 내가 타던 차는 레이였다.
작고 소중했던 나의 하얀 레이.
레이는 서울에서 타고 다니기에 완벽한 차였다.
언제 어디서나 주차하기 편하고,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다니기도 편했다.
하지만 서울 생활을 정리하면서 레이도 함께 처분했는데,
시골 생활을 하면서 차를 얼마나 타고 다니겠나 하는 생각과 살림이 복잡해지는 게 싫어서 그랬다.
그리고 이건 어쭙잖은 서울 생활에 물든 도시인이 한 큰 실수였다.
서울에선 승강장 전광판에 다음 버스 도착 예정시간이 9분 뒤라 떠도
'아 방금 버스 갔나 보네.'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골 버스 승강장에선 다음 버스가 68분 뒤 도착이어도 양반인 편이다.
어르신들은 종이로 된 버스 시간표를 붙여두고 그 시간을 맞춰 집에서 나오신다는 걸
버스 타기를 몇 번 시도하다가 정류장에서 마주친 분에게서 들었다.
처음부터 없던 것보다 있다가 없어지는 게 더 견디기 어렵다는 걸
시골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여기는 마을버스도 없고, 지하철도 시내에 깔려있지 않다.
당장 도서관에 가려고 해도 40분이 넘게 걸어가야 하지만
차를 끌고 가면 8분 남짓밖에 안 걸린다.
(방금 지도 어플로 찍어보니 그렇게 나온다. 차이가 생각보다 더 커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나는 아빠 차를 끌고 다니게 되었다.
아빠 차는 오래된 세단인데, 처음엔 넓고 길어진 차폭이 너무 낯설어서 운전을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며칠 아빠 차를 끌고 다녀보니 시골이라 교통량이 많지 않고, 주차장도 여유로운 편이라 신경을 곤두세우며 운전할 필요가 없네~라고 안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사고가 났다.
사고는 방심했을 때 벌어진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추운 날씨에 잠깐 걷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골목길 안쪽까지 차를 끌고 들어간 날,
차 겨우 한 대를 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주차장에 차를 대는 데 성공했다.
운전에 이제 좀 익숙해졌나 우쭐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라는 걸 모른 채.
내가 차를 댄 곳은 정말 정말 좁은 공간에 겨우 차 한 대를 댈 수 있는 공간이었고,
내가 일을 마치고 나왔을 땐 내가 들어갔던 입구 좌측에 차 한 대가 불법주차를 해 둔 상태였다.
차 앞유리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받질 않았다.
빨리 차는 빼야 하고, 전화는 받지 않고, 어찌어찌 차가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나는 용감하게 차를 빼기로 결심했고.
입구 왼쪽에 주차된 차를 피해 최대한 오른편으로 붙어 운전을 시작했다.
거의 차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순간.
'스윽-'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왼쪽 차만 신경 쓰다가 오른쪽에 있는 전봇대에 신경을 못 쓴 탓이었다.
곧바로 차를 세우고 내리니 차와 전봇대가 완전히 맞닿아 있었다.
맨 처음 든 생각은 '아 망했다.'였다.
하필 아빠 차를 빌려 타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아빠가 차를 얼마나 아끼는 분인지 잘 알고 있어서 더 절망스러웠다.
일단 빼던 차를 마저 빼야 했는데,
이제와 후진을 하면 차를 한번 더 긁게 될 테니
그저 전봇대와 맞닿은 채로 차를 빼는 수밖에 없었다.
긁힐 줄 알면서 차를 빼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정말이지...
그건 상상보다 더 최악의 기분이었다.
겨우겨우 차를 빼고 나니 뒷문에 긁힌 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꽤 넓은 범위에 하얀 선들이 죽죽 그어졌다.
살짝 긁혔다면 모른 척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실토하기로 했다.
"아빠, 바빠?"
"아니? 왜?"
"아빠, 나 차 사고 냈어. 아빠 차 긁었어. 미안해."
"안 다쳤어? 어디서? 왜?"
아빠의 말이 갑자기 빨라졌다.
"나는 안 다쳤는데 차가 다쳤어. 차 빼다가 전봇대에 옆구리 긁었어 미안해."
"그럼 됐어."
"이게 끝이야?"
"무슨 말을 더 해. 이미 긁힌 거. 너 안 다쳤으면 됐어."
그게 끝이었다. 정말로.
잠시 뒤 아빠에게 소식을 들은 엄마에게도 전화가 왔다.
"차 긁었다며?"
"응 근데 아빠가 별 말을 안 해서 더 미안하네."
"너 안 다치고 남 안 다쳤으면 된 거지 뭐가 미안해."
"아니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건데."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네가 제일 놀랐겠지. 집에 운전 조심해서 와."
엄마와의 통화도 이렇게 끝이 났다.
차 사고와 아빠와 엄마와의 통화까지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벌어진 사건이었다.
차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고 때문에 놀라서 이런 기분이 든 걸까? 궁금해졌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선 누군가 잘못을 하면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는 늘 받아들여졌다.
어린 나의 머릿속에선 '미안해.'와 '괜찮아.'는 한 쌍으로 붙어 다니는 말이었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미안하다는 말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건.
이제는 실수를 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말해도 그게 전부가 아닌 경우가 더 많았다.
'왜 실수 같은 걸 해?'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이런 말들은 나에게 '더 이상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해?'라는 의문이 들게도,
'괜히 사과했다.'는 후회를 하게도 했다.
이번에 내가 느낀 그 이상한 기분은 거기서 온 것이었다.
실수에 대한 사과를 받아들여 준다는 것.
부모님이 그저 내 한 몸 안 다쳤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하는 일이 정말로 낯설었다.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셋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차가 어떤 상태인지 함께 내려가 보기로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핸드폰 플래시를 비췄을 때, 낮에 보았던 흰 줄들이 여전히 뒷문에 남아 있었다.
"생각보단 괜찮은데?"
사건현장을 확인한 아빠의 첫마디였다.
"근데 저거 저렇게 넓게 기스났는데 어떡해?"
아빠의 눈치를 보며 내가 물었다.
"아빤 네가 전봇대에 박아서 문짝 움푹 들어간 줄 알았지. 저 정도면 양호해. 컴파운드로 조금 문질러도 절반 정도는 사라질 것 같은데?"
"진짜 미안해 아빠."
"차는 원래 소모품이야."
피해를 입은 건 아빠인데 괜찮다고 위로를 하는 사람도 아빠인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한 걸음 뒤에서 상황을 살피던 엄마가 말했다.
"저거 반달모양 같지 않니? 특색 있다. 얘."
"? 엄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잘 봐봐 반달 모양 같잖아."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한밤중 주차장에서 우리 셋은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웃음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실수할 수 있지 안 다쳤으면 됐어.
그 당연한 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었다.
PS. 원래는 당장 흠집제거나 도색을 하려 했지만 엄마의 말을 듣고 며칠 그대로 두고 보기로 했다. 반달무늬가 있는 차라니 너무 낭만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