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목이 칼칼했다.
미세먼지 때문인가, 아니면 겨울이라 건조해서 그런가?
앞으로는 가습기 켜 두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야겠다고 결심한 다음날
나는 일주일을 꼬박 앓게 된다.
처음 시작은 평범했다.
목이 조금 불편하다 정도에서 잔기침이 나기 시작했고,
머리에 띵-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눈 뒤쪽이 욱신거리는 듯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도가 심하진 않아서
'조금 쉬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평소에 감기에 걸리면 아주 심한 몸살에 시달리는데,
이번 감기는 견딜 수 있게 아팠다. 그게 문제였다.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병원 가기를 미루다
결국 일주일 넘게 어중간한 침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에 하던 일들을 70% 정도의 효율로 행하는 건 효율이 낮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무기력이라는 감각을 오랜만에 마주 보게 했는데,
결국 이번 주 월요일엔 하루 종일을 앓아누워있었다.
감기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자다 깨기를 몇 번,
몽롱한 시야로 천장을 바라보다가 옛날 생각이 났다.
오랜 수험생활로 지쳤던 내 20대 후반의 어느 날.
그때는 몸이 아프면 아프다는 사실 자체에 짜증이 났다.
공부해야 할 게 이렇게 많은데,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컨디션 관리를 왜 제대로 못 했지.
아픈 자신을 끝없이 벼랑으로 내모는 느낌.
하지만 수험생활이 길어지자 가끔 찾아오는 아픈 날이 오히려 숨 쉴 구멍이 되어주곤 했다.
아픈 게 낫지 않았으면 차라리 계속 아파서 공부를 못 하게 되었으면.
그렇게 바라는 나를 깨닫게 된 날도 있었지.
맞아 그랬었지.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아픈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렇게 오래 맘 편히 앓아본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시간이었다.
가만히 누워 아픔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이런 시간이.
당장 일어나서 내 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서울에서 혼자 지낼 땐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잘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아프다고 이야기해 봤자 쓸데없는 걱정만 더하는 것 같았고,
아프다고 말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하지만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삶을 택한 이상
이제는 아픈 사실을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내 안색만 보고도 "어디 아파?"를 연신 물어보시곤
"빨리 병원 가."라고 성화셨지만
사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시선이 좋았다.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시간.
다시 약을 먹고 잠들었다 일어나니 머리맡에 초코송이 한 상자가 놓여 있다.
입맛이 없는 나를 위해 엄마가 사다 둔 거겠지.
아직도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과자를 기억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초코송이 상자를 매만지면서
이렇게 마음껏 아파볼 수 있는 날을 가져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마음껏 아플 수 있는 날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