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따다 줄게요

두려움에 맞서는 농담에 관하여

by Ooo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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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안 왔으면 좋겠어.”

한 쪽 볼에 커다란 뾰루지 같은 게 돋은 일흔 다섯 여자의 얼굴이 불긋하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피부염을 앓고 있다. 가을에 예정됐던 어깨 관절 수술은 인대가 버티질 못한다고 했든가, 그런 이유로 기약 없이 미뤄졌다 했다. 센 진통제를 달고 사는데도 어깨 통증은 밤이 되도록 가라앉질 않는다고도. 그 때문에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단다. 이십 여분이 지났을까. 하릴없이 엄마 얘기를 듣고 있자니 슬슬 짜증이 난다. 나는 나쁜 딸이 아니다. 고작 이십 분을 엄마의 하소연을 들었다고 해서 덜컥 성질을 내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고로, 엄마의 말을 잘라먹는 나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나 일 있어서 가봐야 돼.”


이 정도로 물러설 엄마가 아니다. 무언가 종알종알 말을 이어가긴 했는데 어떤 말들이었는지 더는 기억에 없다. 짜증과 화가 가득해서 그저 빨리 엄마 집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 제 집에 와서도 화는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나는 나쁜 딸이 아니다. 꼼짝없이 두 시간여를 엄마의 얘기만을 들을 적도 있었는 걸. 간간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은 고작 이십 분. 어제는 저기가, 오늘은 여기가 아프다는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들. 그런데도 계속 화가 너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화병에도 듣는 진통제는 없는 것일까. 나 역시 오늘 밤이 고단하겠다.


밤이 와서야, 통증과 나만이 오롯이 남고서야 안다. 나는 지금 분해 죽겠는데, 화라는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오늘 나의 밤과 엄마의 밤은 다르지 않은 밤일 터. 그러니까 통증으로 밤새 뒤척여본 사람은 알지. 누가 대신 앓아줄 수도 없는 그것은 온전히 그 자신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거. 고통에 겨워 차라리 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너무나 절박하길래 화가 났던 거였어. 진통제도 듣질 않는 그 밤을 내가 멈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스스로가 지독히도 무기력한 기분이 들어서 분이 났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조금씩 몸이 허물어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아픈 사람만 하겠는가. 우선 상냥했더라면 좋았을 걸. 뒤늦게 가슴 치는 밤.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낮이 가면 밤이 오는 것이 이치이듯 일흔 다섯 엄마의 몸에도 하루하루 통증은 멈추지 않을 테지. 그에서 도망치지 않는 일. 아무 것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네. 밤이 안 오면 좋겠다고요? 그럼 달을 따다 줄게요. 한낱 흰소리면 어떤가. 우리 잠깐 웃었으면 된 거야. 혹 모르지. 울 엄마는 그 밤에 달큰한 꿈을 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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