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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제로 Nov 24. 2020

그녀의 나이는 손가락 셋, 그리고 다섯-베트남 닌빈

엄마와 처음 떠난 해외여행,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엄마.

먼 유럽의 한 나라로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 확정되고

그 기간을 1년 정도로 예측하고 있을 당시,

처음으로 엄마와 단 둘이 비행기를 타보고 싶어 졌다.

그때의 나는 유난히 엄마와의 여행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단 한 번도 출가를 해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독립하는 곳이

10시간 걸려서 도착하는 낯선 땅이라는 생각에 더 응석을 떨었던 것 같다.

그 불안감과 닥쳐올 그리움을 처리하기 위해선 특별한 추억이 필요했다.


그래서 해외여행 일정에 부담감을 느끼는 엄마를

유별나게 설득했고, 일 년 동안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눈물을 머금으며 투자했다.

그렇게 베트남 북부 여행을 떠나기로 모녀는 결정했다.


그렇게 '엄마' 그리고 '해외여행'에 초점을 맞춰 떠난 여행에서

또 다른 '엄마'를 만나게 되어

늘 마음에 품고 생각하게 되는 일화가 생겼다.

닌빈에서 뱃사공을 만났을 때 있던 일이다.


우리가 탑승한 작은 대나무 배, 삼판배의 뱃사공은 나이가 많아 보였다.

노를 젓다가 힘이 드는지 자꾸만 누군가와 전화를 하면서 쉬어 갔고,

때때로 말을 걸어왔다.


물론 우리는 베트남어를 할 줄 모르고 뱃사공은 한국어를 할 줄 몰랐기에

음성으로 나누는 대화가 아닌 눈빛과 상황을 파악해 나눈 대화였다.


그중 거의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질문은 우리 엄마를 향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난 전혀 못 알아들었는데 엄마는 신기하게도 척척 이해했다.


그래서 엄마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나이를'보여주었고' 뱃사공은 엄마를 한참 바라보다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엄지 손가락을 들며 엄마를 가리켰다.


그니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쉰이 넘었는데 피부가 나보다 훨씬 좋네요."


그러자 엄마는 너무 당연하단 듯이 한국어로 물었다.

나는  모습이 능청스럽지만 사랑스러워 까르르 웃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엄마가 묻자,

그 뱃사공은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그녀의 나이는 손가락 세 개, 그리고 다섯 개.

서른다섯이었다.

서른다섯은 한국에서 여전히 혹은 한창 예쁠 그럴 나이라 생각했기에

그녀와 어울리는 나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쉰이 넘은 우리 엄마와 있어도

엄마가 한참 더 동생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 짧은 순간 나는 진지하게 놀랐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기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값을 지불하고 배에 탔음에도

괜히 내가 이 배를 타서 이 분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뱃사공은 갑자기 배에 보관하던 돈통을 들어 보이며 눈빛과 손가락으로 말했다.

"1달러를 더 주세요."


 그래 불편했는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다소 퉁명스러운 여행자에 속한다.

누군가 다가오면 들뜬 마음으로 반겨주기도 하지만

우선 경계부터 하고, 이미 지불한 금액 외에

추가적인 돈을 요구하는 경우 무시한 적도 많았다.


그런 내가 마음이 흔들려 어쩌지 하며 망설이고 있는 순간

다시 한번 그녀의 손가락이 말을 걸었다.


그 손가락은 당신의 배를 가리키다가, 그리고 또 나를 가리키다가

숫자 4를 만들어 보였다.

"나에겐 아이가 넷이나 있어요."


우리의 뱃사공은 베트남에서 아이 넷을 키우는 엄마였다.


결국 퉁명스러운 여행자는 '그래 더 좋은 배를 타는 거라 생각하자'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이미 값을 지불하였지만 처음으로 탑승비를 지불하듯 두 손으로 돈을 건넸다.


그러자 잠시라도 망설였던 내가 미안할 만큼 그녀는 손을 잡아주며 고맙다고 표현했다.

노를 젓고, 우리에게 말을 걸 때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과 목소리를 냈던 뱃사공은

처음으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고맙다고 했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이 일화를 생각하면 끝맺음이 어렵다.

어떤 감정을 가지고 떠올려야 하는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동정심도, 부끄러운 마음도, 기쁜 마음도 그 어떤 마음도 가질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다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녀를 떠올리면

엄마들이 손가락으로 능수능란하게 나누던 대화와

환하게 웃던 얼굴부터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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