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런던 여행의 끝에서 만난 또 하나의 난관.
갑작스레 비행기가 3시간쯤 연착되었다.
저녁 비행이었기에 이미 예매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 기숙사’행 Flix버스를 놓치면
도무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막막하기보단 의연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미 런던 여행 초반부터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기숙사에서 공항 가는 길에 플릭스 버스에서
파우치를 통째로 잃어버렸고,
그 안에는 모든 화장품 그리고 기숙사 열쇠가 들어 있었다.
고작 파우치 하나 잃어버렸을 뿐인데
기숙사 방으로 돌아갈 방법도, 물건도 몽땅 사라져버렸다.
여행 내내 초반에는 혹시 캐리어에 넣고 못 찾는 건 아닐까,
방에 애초에 두고 온 건 아닐까 하며
스스로 희망고문을 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공항 분실물 센터에 들렀다.
직접 눈으로 내 물건이 없음을 확인하자
그동안 수차례 기도했던 소망이 깨졌다.
하늘은 대가교환을 하자는 듯이
내 소원을 무시하고 그 대신 완벽하게 맑은 런던 날씨를
선물했던 걸까.
어쨌든 다시 공항에 있는 시점으로 돌아가자면
그동안 마음 졸였던 일들 덕분인지
비행기 연착 정도의 서프라이즈엔 큰 타격을 못 느끼며
태연히 공항 바닥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21:00 드디어 비행기가 도착했다.
답답하고 짜증 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사실 그냥 체념을 한 상태였던 것 같다.
때마침 공항에서 기숙사까지 가는 문제 역시
기숙사 친구 다니엘이 차로 픽업을 해주기로 해
고맙게도 해결되었다.
그렇게 기숙사 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문제 하나만 빼고
나머지가 해결되었기에 조금이나마 안도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연히 창가 좌석에 배정되어
지친 마음과 몸 대신 눈만 굴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유럽의 여름은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었기에
그 무렵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보았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듯이
빨간 노을이 하늘과 나의 눈을 물들였다.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었다.
벅차오르는 감정과, 울컥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으며 그렇게 집으로, 다시 집으로.
메모장에는 ‘오늘은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라는 말을 남긴 채
무거워지는 눈을 감고
무거운 마음은 노을 지는 구름 위에 살포시 놓고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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