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 애증의 로맨스
munto 거기서부터 쓰기 2019 겨울 시즌 3주차: 공간 의인화하기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하나 고른 뒤, 그 공간을 의인화하여 글로 표현해 봅니다. 글을 쓴 후 듣는 사람들은 그 공간이 어디인지, 무엇인지 맞혀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 놓고 1년 동안 타지 않고 세워두었던 차를 운전하게 되면서 차와 나누었던 감정을 연애편지로 써 보았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건 2년 전, 우리가 함께한 지는 1년.
블랙 수트에 댄디하게 곱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은색 벨트가 윤이 나게 빛나고, 과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게 정돈된 모습으로 우리집 앞에 매일같이 서 있던 당신을 모른 척 외면하고 1년이란 시간이 허무하게 흘러갔죠. 처음엔 그냥 당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나일리 없다고 스쳐지나갔어요. 그러다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외로워보이던 작년 겨울쯤엔, 당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고, 아니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 이 변덕스러운 세상에서 그것만큼 강력한 유혹의 기술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꾸만 당신에게 눈길이 가는 걸 멈출 수 없었지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겁쟁이인 나를 보다 못한 당신의 오랜 친구가 나를 붙들고 당신에게로 끌고 갔죠. 이미 반하고 보니 숨이 막힐듯 섹시해 보이던 당신의 허리 안쪽 품으로 처음 파고든 그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가빠졌어요. 눈앞이 아득해질 만큼 긴장했고, 손이 차가워졌고, 끝내 바보같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죠. 민망해하는 나를 당신은, 오랫동안 그저 집 앞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서서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죠. 이럴거면 나를 흔들어놓지 말았어야지, 혼자 애를 쓰다 얼마나 원망했는지 당신은 아나요?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날카로운 첫 포옹의 순간은 내 시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어요. 매일매일 당신 품에 온 몸을 맡겼지만, 한 번도 당신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결국 당신 몸에 상처를 내고 말았죠. 그날 밤 나는 당신 몸에 난 생채기가 내 살을 파고드는 듯 마음이 아렸어요. 상처가 나던 순간의 당신의 거친 숨소리가 자꾸만 귀에 맴돌았죠. 이대로 영영 당신을 만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봐, 그래서 당신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될까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딱 알맞는 연고를 사고 피부에 좋다는 오일까지 정성스럽게 발라주며 당신 품에 안기기를 다시 몇 달, 어느 날은 미치게 심장이 뛰어대더니 또 어느 날은 당신이 미워지기도 하고 어쩌다 당신같은 마성의 나쁜 남자에게 빠진 건지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했죠. '애증'이라는 단어의 뜻을 온 몸의 신경세포가 절절히 경험하고 있던 어느 날, 그날도 당신의 눈치를 보느라 애꿎은 발만 까딱이고 있었는데, 당신이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Fly me to the moon. 처음 듣는 당신 목소리에 긴장이 풀려 당신과 완전히 한몸이 되어 즐긴 그 부드러운 리듬감 속에 정말로 달에 날아갔다 온 기분이었어요. 그날부터였어요. 당신이 노래를 부르면 더 이상 긴장하지 않고 불안감에 떨지 않고 당신과 함께할 수 있었어요.
따뜻한 온기로 나를 안아주는 당신이 있어 다시 찾아온 겨울이 전혀 춥지 않아요. 어제는 내 취향의 향수를 당신에게 선물했어요. 양키캔들에서 당신과 딱 어울리는 향수를 추천해주는 바람에 대량구매했어요. 향수 이름은 midsummer's night, 한여름밤. 겉에 그려진 그림이 큰 보름달이었는데, 당신이 부르던 Fly me to the moon에 맞춰 우리가 처음 하나가 된 그 한여름밤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이 그림도 당신 마음에 꼭 들었으면 좋겠어요.
나쁜 남자라고 오해해서 미안해요. 가끔 가만히 서서 당신을 노려본 것도 사과할게요. 아무리 추운 날도 당신과 함께면 봄이에요. 아무리 더운 날도 당신과 함께면 가을 바람이 불어요. 당신처럼 섬세한 사람은 없어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해질녘 당신에게 몸을 기대면 당신은 댄스가수였다가, 발라드가수였다가 때론 개그맨이 되어 나를 위로해요. 낑낑대며 짐이 많은 날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짐을 뺏어 뒤로 척 걸쳐 메고는 나에게 말을 걸죠.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은 당신에게 안긴 채로 먼저 리허설을 해보기도 하고, 가끔 화가 나는 날엔 괜한 화풀이를 하기도 하죠. 뭘해도 괜찮을 것 같은 당신 표정이 나를 쉬게 해요. 당신만 있으면 난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그리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침마다 당신과 함께하는 영어공부조차 행복해요. 늘 정해진 만큼의 음식만 먹는 당신 덕분에 나도 과식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될게요. 봄이 오기 전에 당신 구두를 고르러 가야겠어요. 오래 오래 함께해요.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빠졌어요. 나의 당신, 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