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받아들이는 시간, 일몰예찬

munto 거기서부터 쓰기 2019 겨울 시즌 4주차: 사진으로 글쓰기

by 김현승

*한 주 동안 영감을 받은 사진을 몇 장 고른 뒤, 그 사진으로부터 출발해서 글을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심코 들여다본 휴대폰 갤러리에 유독 일몰 사진이 많았습니다.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해 뜨는 걸 보러 간 적이 있다. 애국가 영상에서나 봤던 일출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정동진 정도는 가줘야 하는 거라며, 매일 뜨고 지는 그 해가 그날만큼은 나만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들떠 있었다. 스무살은 그 어떤 유치함도 용서가 되는 나이니까, 아무렴 괜찮았다. 어린 나의 들뜸에 완벽한 보답을 하듯 동해바다는 나에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의 불덩이 같은 해를 힘껏 밀어 올려주었다. 해변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추위에 떨며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이렇게 완벽한 일출을 보기는 평생 쉽지 않다며 다들 기분 좋게 아침 식사를 하러 흩어졌다. 하지만 나는 혼자 이상한 실망감에 휩싸여 밤기차의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 왔고 결국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맛없는 설렁탕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었다. 강렬한 빛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모든 것이 낯설고 그저 눈이 부실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뜨거운 새 해가 떴으니 뭐라도 열심히 힘차게 해내고말아야만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부담스러움에 목이 꽉 막힌 듯했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일출을 보러 가지 않는다.


한 번 실망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생애 최초의 일몰 풍경을 보러 가는 길은 그렇게 들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첫 일몰은 안면도에서 보았는데, 그날은 구름이 많아서 해의 윤곽은 다 가려져 있었지만 대신 구름을 프리즘처럼 통과한 일몰 시간대의 햇빛이 온 몸의 피부에 스며드는 듯했다. 석양이었다. ‘일몰’은 ‘해가 짐’을 의미하는 단어일 뿐이지만, ‘석양’은 ‘저녁때의 햇빛’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니 해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저녁때 느껴지는 햇빛의 분위기를 담아놓은 단어다. 나는 일출형 인간이 아니라 일몰형 인간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석양형 인간인 것 같다. 문득 ‘노을’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뜻을 찾아보니,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이라고 되어 있다. 해가 뜨든 지든 하늘이 벌겋게 보이면 다 노을이라니, 일출형과 일몰형 사이 어디쯤에 애매하게 놓인 단어 같아서 내 스타일이 아니다. 언젠가 드라마 중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이 있었는데,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가 지고 사물의 윤곽이 흐려질 무렵 집에서 기르는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낯설어 보이는 섬뜩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반대다. 석양 속에서 몽글몽글해진 마음으로는 뭐든 받아들이는 게 가능해질 것만 같다. 사나운 표정의 공격적인 어떤 것도 윤곽이 흐려지고 석양빛이 찾아오면 이내 꼬리를 내리고 차분해질 것만 같다.

나는 해가 지는 시간이 좋다. 일몰 후에는 곧 어둠이 찾아온다. 깊은 사색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출 후의 풍경처럼 아침식사가 되는 근처 식당을 찾아 시끌벅적하게 흩어지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앉은 자세 그대로 하던 생각을 쭉 이어가다가, 함께 일몰에 젖어든 친구가 옆에 있다면 기분에 따라 겻들인 술 한 잔에 오고 가는 이야기가 깊어진다.

일몰은 해가 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어둠을 받아들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동안 꽤 여러 번 우리는 일몰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알아버렸을 때, 분명하지 않았던 것이 선명해졌는데 그게 기대한 것과는 너무나 멀리 있는 것일 때, 그걸 차분히 받아들일 일몰의 시간 말이다. 하늘이 어둠을 받아들이느라 펼쳐내는 격정적이고 황홀한 색감들은 어쩌면, 원치 않는 받아들임의 고통과 성숙의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절규일지도 모른다.

일몰은 언제, 어디서, 어떤 날씨일 때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르다. 같은 날 보아도 구름의 위치를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몇 살 때 어떤 관계의 누구와 함께 보느냐에 따라 또 다르다. 원치 않던 것에 대한 받아들임의 과정도 그렇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 연령대에 따라 받아들임에 걸리는 시간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며 고통의 크기 또한 다른 것이 일몰과 꼭 닮았다. 어떤 일몰이든 어둠은 반드시 찾아오고 또 의심할 여지없이 빛이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지난 일을 돌이켜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은 사람이 가식 없는 밝은 표정을 가질 수 있다.

나는 해가 지는 시간을 좋아한다.

패들 보드 위에 서서 일몰을 바라보면, 마치 비를 맞듯이 석양을 온몸으로 맞는 기분이다. 석양에 취하면, 떨어지는 해에게로 빨려들어가듯 노를 계속 젓게 된다.


보라카이 화이트비치의 바다는 매일 매일 새로운 빛깔의 석양을 선물한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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