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공간들에 대한 단상

munto 거기서부터 쓰기 2019 겨울 시즌 5주차:사라진 것에 대해

by 김현승

*사라진 것들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쓰려고 하니 서글프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도, 이 공간도 언젠가 사라진다. 함께 글을 나누었던 따뜻한 순간에 대한 나의 기억마저 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하다. 일전에 썼던 글에서 나는 흔적을 남기고 기록하는 것에 집착한다고 쓴 적이 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붙잡아 두고 싶다는 몸부림의 흔적은 결국 사진이나 동영상, 몇 줄의 문장이 되어 남는데, 그것도 그걸 보아줄 사람이 사라지면 무슨 소용인가 싶어 또 서글프다.

나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슬프다. 그 공간에 함께했던 사람과, 이야기와, 그걸 둘러싼 특별한 공기까지 통으로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다. 소중한 추억은 주머니 속에 손난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손이 꽁꽁 얼었을 때 은색 똑딱이를 누르면 하얗고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뜨끈하게 피어나는 것처럼, 마음이 얼어붙은 어느 날 그렇게 누르고 만지작거릴 추억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 추억이 담긴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바로 그 손난로의 은색 똑딱이가 없어져버리는 것 같다. 뜨끈한 추억을 피어오르게 할 중요한 버튼이 부서져버리는 거다.

외할머니가 사시던 빨간 벽돌집과 앞마당이 공사장 먼지 부스러기로 변해버렸을 때 처음 그랬다. 동생하고 같이 외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몇 해에 걸쳐 열심히 찾은 땅따먹기 맞춤형 돌멩이들을 소중하게 숨겨 놓았던, 입구에서 오른쪽 두 번째 나무 뒤쪽 구석에는 새로 지을 건물에 바를 시멘트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거의 명절 때만 만나는 외할머니와 헤어지기 싫다고 집에 갈 때마다 울어대던 내 엉덩이를 두드려주던 외할머니의 소중한 김장독이 묻힌 자리에는 콘크리트 철근들이 흉기처럼 박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 대학생 신분으로 처음 만난 동기들과 첫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이 포크레인에 무참히 허물어질 때도 그랬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국제관 건물을 지을 자리인데 공사 일정이 애매해서 첫 수업만 거기서 하고 제대로 된 강의실이 정해질 때까지 임시 강의실로 옮겨야 한다나. 개강 전에 이미 몇 차례 신입생 환영회를 하며 선배들과 대면하고 음주의 신세계를 경험했던 그곳이 나는 이미 꽤 좋아졌는데,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과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낡은 나무 의자마저 꽤 느낌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새 정이 들었는데, 이름 모를 외국인들에게 쫓겨난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들어 초호화 럭셔리의 끝판왕이었던 국제관 건물에 한동안 발을 들이지 않았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나란히 옆으로 앉아 담요 하나를 덮고 하루 종일 어깨를 기대 영화를 보고 재잘거리던 홍대 근처 골목의 북카페도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하얀 벽돌의 3층짜리 그 감성적인 건물이 통째로 냄새 풀풀 풍기는 꼼장어 집 건물로 바뀌어 있을 때의 그 황망함을 잊을 수 없다. 카페에서 누군가와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앉는다는 것의 간지러움을 처음 느끼게 해 준 그런 곳에 꼼장어 집이라니!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와 그보다 더 황망한 이별을 한 후, 그 꼼장어 집은 친구들과 함께 꼼장어를 씹으며 남자친구까지 함께 씹어 삼켰던 무시무시한 곳이 되고 말았다. 그 자리 그대로 북카페가 있었다면 간지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이 황망한 이별의 기억을 조금은 덮어주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수십 년, 수백 년이 되었다는 공간에 가면 꽤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된다. 가령 오래된 사찰을 찾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수백 년 동안 간절한 사연들이 오고 갔을, 어쩌면 생과 사의 운명을 넘나드는 처절한 아픔까지도 묵직하게 껴안은 그 공간에는 ‘추억’이라는 말보다는 더 깊이 있고 ‘역사’라는 말보다는 감성적이어야 할, 어떤 새로운 단어로 표현될 무언가가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오직 그 사실 하나만 영원하다는 어떤 이의 말은 정곡을 너무 깊숙이 찔러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따위의 말은 적어도 부서져버린 추억 앞에는 쓰고 싶지 않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서져버린 추억 앞에 무딘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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