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첫 영화의 추억

munto 거기서부터 쓰기 2018 여름 2주차 : BGM으로 쓰기

by 김현승

*의미 있는 노래를 한 곡 선정하고, 그 노래로부터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굉장히 흥행을 해서, 배만 타면 다들 뱃머리에서 하늘을 날겠다고 하던 그즈음이었다. 당시 영화관 근처에서 옷가게를 운영하시던 아빠는 가게를 엄마한테 맡기고, 나를 영화관에 데려갔다. 그때 내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 손을 붙잡고 <타이타닉>과 동시에 상영중이었던 이름 모를 애니메이션을 보러 들어가던 장면이 기억에 있다. <타이타닉>은 15세 관람가여서 내가 볼 수 없는 영화였지만, 보호자가 동반할 경우 입장이 가능했던 것 같다. 아빠는 애니메이션을 보러 들어가는 아이들 쪽을 바라보는 나에게 ‘저런 건 어린 애들이나 보는 거야’라고 말하며, 당시 누가 봐도 어린 애였던 나를 끌고 <타이타닉>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엔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는 중간에 화장실 갈 쉬는 시간도 주고 그랬는데, 나는 쉬는 시간에도 멍하게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극장에 숨죽이고 앉아 내 작은 몸을 뒤덮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스크린 세상 속에 푹 빠져 세 시간 가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춤을 추는 감정선을 느끼는 것, 잔뜩 클로즈업된 배우의 눈빛에 압도된다는 것, 그게 얼마나 사람을 짜릿하게 만드는 것인가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중학생이 된 나는 영화감상클럽에 가입했다. 그때는 학교에서 토요 전일제 클럽활동이란 걸 했는데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오전 내내 자기가 속한 클럽에서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다녔던 영화관은 지금의 멀티플렉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어서 상영관 가운데 큰 기둥이 있기도 했고, 붓으로 직접 칠해 만든 허접한 영화 포스터가 영화관 매표소 위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따로 부모님 허락받을 필요 없이 학교에서 공식적인 활동으로 한 달에 한 번, 초등학교 때 느낀 그 신비로운 경험을 꾸준히 할 수 있다니 그보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였다. 영화관에 가면 개봉예정작을 광고하는 차원에서 만들어놓았던 작은 영화 포스터 종이들, 영화 잡지들을 사 모으고 하루종일 그것만 들여다보는 중2병에 걸렸다가 부모님과 치열한 갈등을 겪었다. 분명히 치열한 갈등이긴 했지만, 나는 이내 부모님 말 잘 듣는 착한 딸로 돌아와 얌전히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2년쯤 지나 이때 다하지 못하고 억지로 남겨두었던 반항으로, 나는 예정에 없던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한 6개월쯤 영상자료원에 처박혀 영화ost를 듣고,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 평론 같은 것도 읽다가 밤 늦게 집에 들어오길 반복했다.

영화 <비포선라이즈>는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보게 된 영화고, 대학 공부에 일시 정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데 최초의 씨앗을 심은 영화기도 하다. 그때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은 학교 도서관 3층에 칸막이가 있는 1인 영화감상실이었는데, 거기서 혼자 볼 DVD를 고르다가 케이스에 있는 영화 포스터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녀의 애틋한 눈빛이 마음에 들어 무심코 집어 들었던 영화가 <비포선라이즈>였다. 아무 배경 없이 보는 영화여서 더 몰입하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아빠와 함께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느꼈던 그 짜릿함을 다시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영화관 스크린보다야 비교할 수 없이 작은 화면이었지만, 양쪽에 쳐 놓은 두 개의 칸막이는 나를 영화 속으로 온전히 빨려 들어가도록 하는 데 충분했다.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두 남녀가 함께 기차에서 내려 다음 날 아침 해 뜨기 전까지 운명적인 하룻밤을 보내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여행과 낭만, 사랑에 대한 생각으로 내 스무살 촉촉하고 예민한 감성을 오랫동안 간지럽히기에 충분했다. 두 남녀가 우연히 들른 비엔나의 한 레코드 가게 비좁은 청음실에서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서서 음악을 들으며 서로에게 던지는 눈빛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던 그 장면에서는 이미 나도 그 청음실에 함께 들어가 있었다. Kath Bloom이 괜찮을 거라고, 이리 오라고 Come here을 반복하는 부분에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같은 과 선배들은 행사 제목만 바뀌고 결국은 다 술자리인 모임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들어대며 신입생들을 즐겁게 해주겠다고 의욕에 불타 있었지만, 내 진짜 즐거움은 도서관 3층 영화감상실에서 혼자 영화에 몰입하는 시간이었다. 주소를 교환하고 몇 번 연락을 주고받다가 흐지부지되는 그렇고그런 관계가 되기 싫다는 여주인공의 말대로, 두 남녀는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6개월 뒤 같은 자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감성에 젖어 영화감상실에서 나오는 길에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9년 뒤 이들의 이야기가 <비포선셋>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이어진다는 엄청난 정보를 얻고 정신이 더 아찔해졌다. 다음 날 공강 시간에 곧바로 <비포선셋>을 이어봤는데, 이내 극심한 후회와 우울감과 분노로 며칠을 보내야했다. 6개월 뒤에 다시 만나자는 주인공들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고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둘은 30대가 되었고 남자는 ‘보육원을 차린 수도승’과 같은 결혼생활을 인내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로, 여자는 NGO활동을 하는 노처녀로 변해 재회한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들에게 9년 전의 그 풋풋함은 없다. 낭만도, 꿈도, 열정도 사그라들어 보였다. 스무 살의 나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나보다. 남자를 자기 집 소파에 앉혀 두고 기탓줄을 튕기며 매혹적인 노래를 부르는 여자 주인공이 그저 유부남을 꼬시는 천박한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나는 그 때, 단지 의무감으로만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는 남자 주인공의 와이프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6개월 뒤의 약속이 지켜졌거나, 설사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의 사랑으로 다른 누군가가 상처를 받아야 하는 그런 이기적인 사랑 이야기를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나보다. 그 때 썸 비슷한 걸 타고 있었던 남자 사람 친구 C는 마지막 기타신에서 남자가 와이프에게 돌아가야 하느냐, 남아야 하느냐의 문제로 나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는데, 나는 가정을 버리고 여주인공과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한다는 C에게 대실망하여 다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몸서리치게 유치한 말다툼이었지만, 스무살의 나는 진지했다.

그런데 그렇게 화를 내며 <비포선셋>을 본지 무려 12년이 흘러 내가 영화 속 여주인공의 나이와 같은 서른두 살이 되었다. 12년 동안 나는 평생의 직업을 얻었고,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때로는 소신있게 때로는 비겁하게 내적 갈등을 겪었고, 몇 번의 연애를 하며 더 이상 함부로 설레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며칠 전 <비포선셋> DVD를 다시 꺼내들었다.


<Kath Bloom-Come here> 영화 ‘비포선라이즈’ OST


There's a wind that blows in from the north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 와요.

And it says that loving takes this course.

그리고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말해주네요.

Come here.

이리로 와요.


(생략)


You don't have to run away this time.

이번엔 달아날 필요 없어요.

I know that you're timid.

당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건 알지만,

But it's gonne be all right this time.

이번에는 괜찮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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