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드디어, 사람이 되었어요

munto 거기서부터 쓰기 2018 여름 1주차 :::: 문장 훔쳐오기

by 김현승

*기억에 남는 문장을 가져와서 그 문장으로부터 글을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짧은 두 문장이 모니터에 뜨는 순간, 가슴 속에서 뜨겁고 무거운 무언가가 꿈틀, 움직이더니 양쪽 눈으로 올라와 무색투명한 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그걸 ‘합격의 기쁨으로 흐르는 눈물’이라고 부르는 건 적절치 않았다.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 속 여기저기에 몰래 구겨 넣어 구석구석 쌓아두었던 열등감과 억울함, 서러움과 불안함, 답답함 같은 것들이 뭉쳐져 있다가 한꺼번에 녹아서 흘러나오는 진물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피로가 많이 쌓이거나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어깨에 근육이 뭉쳐 통증이 생기듯이, 감히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는 허락받지 못한 감정들이 계속 쌓이다보면 얽히고설킨 그 묵은 감정 뭉치가 가슴 속 여기저기에 끈적끈적 엉겨 붙게 된다. 그리고 이내 그 거북한 것들은 모든 긍정적 감정들의 생기를 빨아먹기 시작한다. 자아존중감이나 용기, 먼저 합격한 친구들을 백 퍼센트 진심으로 축하해줄 만한 마음의 여유마저 사치로 느껴질 때쯤, 모니터에 뜬 두 개의 짧은 문장이 그 끈적한 것들을 한꺼번에 끄집어낼 수 있는 순간을 허락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이런 걸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하는 건가 생각해보다가, 도무지 실감이 안나 멍하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니 1000일 치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합격의 기쁨’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이틀 정도 지난 후에, 더 이상 무거운 백팩을 짊어진 채 회색 구름으로 뒤덮인 뿔테 안경들의 거리에서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도서관 식당 백반을 6개월쯤 매일 먹다보면 메뉴가 아무리 바뀌어도 다 똑같은 맛으로 느껴진다. 무심한 표정으로 제육볶음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곰이 사람 되려고 100일 동안 마늘하고 쑥만 먹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도서관 식당 백반에서 벗어나려고 분식집에서 주먹밥을 사기 시작했을 때는 2500원짜리 참치주먹밥을 먹을까 1500원짜리 김치주먹밥을 먹을까 고민하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지만, 고작 그런 걸로 즐거워하는 내가 싫어져 괜히 또 짜증이 났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한 사람 분의 역할을 하면서, 당당하게 쉴 수 있는 휴일에는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까 설레는 계획을 짤 수도 있는,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1000일 만에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 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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