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초의 죄책감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단편소설 <공작나방>을 읽어보셨나요?

by 김현승

그날은 아이들과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 <공작나방>을 읽는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단편소설을 읽는 수업을 즐겨 하는데, 일단 길이가 짧은 데다가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 없는 단편소설이라면 특히 그렇다. 괜찮은 단편소설을 만나서 함께 웃고 울고, 그러다가 자기 이야기도 툭 꺼내놓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공간에 함께 있던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특별한 사이가 된다.


<공작나방>은 주인공 하인리히 모어가 나비 수집에 몰두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성장소설이다. 하인리히 모어는 이웃집 소년 에밀이 잡았다는 희귀한 나비를 구경하러 빈방에 들어갔다가 특이하고 아름다운 날개 무늬에 순간적으로 홀려 나비를 훔치고 만다. 그 순간의 긴장감과 초조함이 얼마나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지 읽는 이는 마치 자기가 나비를 훔치고 있는 것처럼 두근거리게 된다. 주인공이 급하게 주머니 속에 나비를 숨기다가 그 소중한 나비가 부서져버렸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여기저기 아이들의 탄식이 흘러나오면, 이 수업은 3분의 1쯤 성공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푹 빠져서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후기를 얘기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경험해야 이후의 대화가 더 솔직해진다. 하인리히는 결국 에밀에게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에밀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화도 내지 않고 단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인리히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겨준다. 아마도 인생 최초의 죄책감과 수치심이었을 그 기억은 하인리히가 어른이 되어서도 나비를 볼 때마다 그를 괴롭힌다. 소설은 집에 돌아온 하인리히가 모아두었던 자신의 나비들을 자기 손으로 비벼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 이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 스스로 잘 파악하곤 한다. 수치스러운 도둑질을 한 데다가 희귀하고도 아름다운 나비를 제 손으로 망쳐버렸으니 스스로 더 이상 나비를 수집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며, 앞으로 나비만 보면 자신을 경멸하던 에밀의 눈빛이 떠올라 없애버리고 싶었을 거라는 대답들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모은 나비가 아까우니 다른 친구에게 팔지 굳이 부숴야 하냐는 귀여운 대답들도 물론 나온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이런 적 있어?’ 물으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그런 적 없다고 하기에는 거짓말같고, 있다고 하기에는 에밀의 경멸하는 눈빛이 떠올라서 그러는지 다들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딴청을 피운다. 소설을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려는 계획이 흔들리는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죄책감을 느꼈던 순간을 먼저 털어놓는다. 심지어 하인리히 모어처럼 당장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지도 못해서 더 수치스럽게 마음 속에 가둬두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초등학교 때 전학을 두 번이나 가는 바람에 총 세 개의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첫 번째 초등학교는 교실 바닥이 마룻바닥이었다. 가끔 손발에 가시도 박히고 손걸레에 왁스를 묻혀서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그런 바닥이었는데, 당시 담임 선생님들은 교실 바닥에 얼마나 윤이 나는지가 환경 미화 심사의 핵심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특히 그랬다. 잘못을 한 아이에게 내리는 벌은 무릎 꿇고 앉아서 손걸레질을 100번 하는 것부터 시작이었고, 큰 잘못일수록 200번, 300번으로 늘어나는 식이었다. 우리 반 전체가 다 같이 떠들어서 단체로 벌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잘못을 뉘우쳐서가 아니라 바닥에 윤이 더 많이 나서 선생님이 만족하신 것 같다고 느꼈다. 많이 문지를수록 더 자연스럽고 은은한 윤이 나는 바닥이라 더 원망스러웠다.


선생님의 마룻바닥 사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끔 바닥에 미세하게 실내화 밑창 자국이 남아 있는 게 보기 싫으셨는지 우리 반은 모두 실내화를 신지 말고 양말을 신든지, 양말 위에 면 소재의 덧신을 신으라는 규칙을 새로 만드셨다. 덧신이 뭔지 그때 처음 알게 됐는데, 당시 구할 수 있던 덧신은 도저히 내 발을 감싸도록 허락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현란한 잔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들뿐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덧신을 가져가긴 했어도 거의 신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두고는 양말을 신고 돌아다니곤 하던 어느 날 미술 시간이었다.


서예를 하는 시간이라서 작은 책상 위에 화선지를 펼치고 먹과 벼루, 먹물을 책상 모서리에 다닥다닥 올려놓은 상태로 글씨를 써야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글씨를 쓰는 친구 팔꿈치를 치거나 먹물과 벼루를 떨어뜨리기 딱 좋아서 집중력을 기르기에는 적절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얇고 잘 번지는 화선지에 먹물을 자꾸 한두 방울 떨어뜨리는 바람에 글씨를 다 쓰기도 전에 종이를 바꿔야 하는 게 귀찮고 짜증이 났다. 특히 집중력이 산만한 아이들에게 그 두 시간은 거의 고문이나 다름없었는데, 반마다 꼭 한두 명씩은 있는 장난꾸러기 현규에게 특히 그랬다. 현규는 하루에 두세 번씩은 꼭 선생님께 혼나고 제일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바닥 닦기 벌칙을 하는데도 매일 엉뚱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혼날 일을 새로 개발하던 아이였다. 마침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마자 현규는 먹물 묻은 붓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화살촉처럼 쥐고는 교실 이쪽저쪽에 앉아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과녁 삼아 던질까 말까를 반복하면서 좁은 책상 사이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때 나는 준비해 온 화선지를 다 써버려서 다른 분단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가서 한 장을 더 받아왔다. 그런데 좁은 자리의 의자에 다시 겨우 앉아 새로 글씨를 쓰려고 보니 바닥에 웬 먹물 발자국이 한없이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맨 앞자리에 앉아 있어서 발자국이 교탁 뒤, 그러니까 칠판 아래 공간을 돌아 다른 분단 맨 앞자리 바닥까지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마룻바닥을 사랑하시는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누군가에게 향할 분노의 목소리를 맨 앞자리에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무심코 시선이 내 발로 옮겨졌을 때, 등골이 오싹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온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조심스럽게 한쪽 발만 살짝 옆으로 돌렸는데도 흰 양말에 검은 먹물이 희미하게 보이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여전히 그게 내 발자국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니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내 손은 이미 서랍 안쪽에 처박아 놓았던 덧신을 찾고 있었다. 조용히 덧신을 신고 비뚤어져 있던 책상과 의자의 줄까지 맞추고 나니, 내 자리까지 이어져 있던 발자국이 분단 사이의 통로에서 멈춰 있었다. 식은땀이 났고, 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좁은 자리에서 힘겹게 먹을 갈고 붓글씨를 쓰는 아이들은 교실 앞 바닥에 뭐가 묻었는지 아무도 쳐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교실로 들어오던 선생님이 마룻바닥에 길게 이어져 있는 검은 발자국들을 발견하시고는 놀라서 벌어진 입과 눈의 크기가 거의 비슷해질 정도로 충격적인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온몸이 공포로 얼어붙어 의자에서 굳은 채로 숨을 쉬지 않았다. 누가 그랬냐고 물으시면 그냥 솔직하게 손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시간도 없이 귀에 들린 건 ‘너 당장 나와!’였다. 그 ‘너’는 분명히 나여야 하는데 선생님은 다른 곳을 쳐다보고 계셨다. 고개를 돌려보니 선생님 외에 교실에 서 있던 사람은 한 손에 붓을 들고 리드미컬하게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던 현규였다. 나는 내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이러다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그랬어요.’ 말해야 하는 입술이 굳어서 도저히 떨어지지를 않았고, 현규는 ‘제가 그런 것 아니에요!’를 외치다가 꿀밤까지 맞으며 결국 꿇어 앉아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규가 선생님께 깨끗한 양말 바닥을 들이밀며 아무리 억울하다고 울부짖어도 문지를수록 번져가는 검은 얼룩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솟은 선생님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현규는 억울함의 분노를 담아 마룻바닥을 뚫을 것처럼 더 공격적인 걸레질을 했다. 범인이 나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 둘을 포함하여 반 친구들 모두에게 하인리히처럼 경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몸은 굳어 있는데 심장이 너무 뛰는 바람에 토할 것 같았지만 남은 미술 시간 내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종례가 끝나고도 남아 있는 얼룩을 지우느라 일하는 선생님 옆에서 걸레질을 하는 현규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혼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내내 양볼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맨날 선생님한테 혼나는 말썽쟁이라고 은근히 현규를 무시하던 내 눈빛이 거꾸로 나를 향해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고 숨이 막혔다.


현관에 들어선 내 얼굴을 본 할머니가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안아주시자마자 통곡하듯 울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현규가 안 가져온 준비물을 말없이 챙겨주기도 하고, 늘 짝꿍이 없었던 현규 옆자리에 만년 짝꿍이 되어주었다. 결국 내가 현규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지만 상관없었다. 갑자기 잘해주는 내가 이상했는지 그렇게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현규도 나는 괴롭히지 않았다. 현규는 늘 붙어 다니면서 챙겨주는 내가 싫지 않았는지 우리는 방학 때도 동생들까지 불러 하루종일 놀다 헤어지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친구로 지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용기를 내지 않고 묻어두었던 미안했다는 말을 현규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내밀 때가 되어서야 말했다. 매일 혼나고 매일 닦았던 기억 말고는 그런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황당해하는 현규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인생 최초의 죄책감을 ‘추억’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면 아이들은 ‘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예요?’, ‘현규한테 차였네요?’하며 나를 놀리고 재미있어 하다가 자연스럽게 ‘저는 예전에요~’ 하고 시작하는 양심 고백의 시간이 찾아온다. 몰래 엄마 지갑에서 천 원을 꺼냈다가 들켰던 일, 버스비 100원이 부족했는데 모르는 척 동전을 와르르 넣고 탔던 일,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질투심에 그 여자아이의 뒷담화를 했던 일까지 시끌시끌해지다가 ‘나도 그랬는데’가 몇 번 반복되면 실수와 후회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아이들 사이에서 함께 성장하는 관계의 끈끈함이 생기는 순간, 나는 현규에게 고맙다. 인생 최초의 죄책감 덕분에 나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절대 미루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어린 시절 선명하게 경험한 인생 최초의 감정들은 가장 진한 색깔로 오랫동안 마음을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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