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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Jun 16. 2021

아무튼, 서점(1)

서점과 나의 이야기

  나에게 서점에서 책 쇼핑을 하는 일은 ‘즐겁다’라는 말로만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로 애틋하게 애정하는 취미다. 단지 아이-쇼핑(window shppping)을 하든, 실제로 책을 구입해서 들고 나오든,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배송을 기다리든 어떤 경우든 그렇다. 영화관에 가면 신작 영화라고 해봤자 당장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아야 대여섯 편인데, 서점은 대형서점이든 독립서점이든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매일 쏟아내고 있다. 비밀스러운 표지들 속에 숨어 있어서 시간을 들여 펼치고 읽어보지 않으면 어떤 내용인지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책들을 멀리서 보다 보면,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나눠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대형서점에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품고 복작대며 늘어서 있고, 독립서점에는 좀 더 은밀한 만남을 기다리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개성적인 포즈로 유혹하는 그런 느낌. 분야별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중심으로 갖가지 프로모션이 이어지는 대형서점들이 각계각층의 인싸들을 향해 조명을 비추는 공연장이라면, 독립서점은 개성적이고 힙한 아웃싸이더들이 모인 클럽과도 같다. 표지는 곧 책이 입고 있는 겉옷이나 마찬가진데, 그래서인지 요즘 독립서점에는 같은 책인데도 대형서점에 입고되는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표지의 한정판 에디션이 등장하고 있다. 어디가 됐든 서점 문을 여는 순간은 마치 소개팅 장소에 처음 도착한 순간과도 같다.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누군가를 고르는 장소다. 

제주도에 있는 <책방무사>. 요조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인데, 서가에 꽂힌 책들이 고심해서 고른 애정하는 책들이라는 게 잘 느껴져서 구입할 책을 고를 때 나도 한참 고심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내력이 있듯이, 내가 이렇게 서점 마니아가 된 것도 다르지 않다.     

  “책 사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은 거야.”

  IMF가 오기 전까지 목이 좋은 곳에서 옷가게를 하던 부모님 덕분에 물질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는 동안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국어 교과서 속표지에 실려 있던 초상화의 주인공에 대해 알아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엄마는 교과서에 있는 것과 똑같은 초상화가 그대로 표지에 그려져 있는 위인 전기를 사다주셨다. 그냥 간단히 알아오라는 숙제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그 정보를 찾겠다고 위인 전기 한 권을 다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동 도서이긴 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하루만에 읽기에는 심하게 두꺼웠고 글자도 많았다. 숙제하라고 얼른 책만 쥐어주고 저녁을 차리고 있는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몰래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다음날 선생님이 숙제 해왔냐고 물어보시면 적어도 초상화 주인공의 이름은 알아냈으니 책은 앞으로 천천히 읽어보겠다고 대답할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다음날 선생님은 그런 숙제를 내줬다는 걸 아예 잊으신건지 속표지를 무심히 휙 넘겨버리고 1단원 수업을 시작하셨다. 허무한 마음으로 엄마한테 책이 아깝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또 책 사는 건 절대 아까운 게 아니라는 말만 했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할머니께 내 책값을 챙겨드리며 나를 자주 서점에 데려가라고 부탁하셨다. 아빠와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옷가게를 지켜야 했던 엄마가 최소한의 교육열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살던 동네에는 ‘대동문고’라는 대형서점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남동생과 나를 놀이터에 데려가듯 거길 데려가셨다. 올 때마다 손주들에게 한두 권씩 책을 꼭 사주고 나가는 VIP 할머니였으니 할머니를 반기는 주인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금세 친자매처럼 친해지셨다.    

  “가서 놀다가 책 한 권씩 골라와.”

하시고는 아주머니 옆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아 한참 담소를 나누시곤 했다. 

  처음에 동생과 나는 서점에서 뭘 하고 놀아야 하는 건지 몰라 최대한 표지가 화려하면서도 책 위에 흥미로운 장난감 부록들이 붙어있는 책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우리는 ‘톰터보’라는 ‘인생’ 모험책을 발견했는데, 인생을 모험한다는 게 아니라 ‘인생 최초’이면서 ‘인생 최고’의 모험책을 발견했다는 얘기다. 하필이면 운명적이게도 주인공이 딱 우리 나이의 남매인데, 차고에 버려진 낡은 가전들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중고 자전거를 수리하다가 우연히 말도 할 줄 알고 수륙양용으로도 달리는 마법 자전거를 탄생시킨다. 그 마법 자전거 ‘톰터보’와 함께 끝없는 모험을 이어나가면서 기괴한 암호를 풀고 미션을 완수하는 시리즈물인데다가, 중요한 암호를 푸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부록으로 붙어있어서 얼마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모른다. 남동생과 나는 이미 책 속의 주인공 남매로 빙의해서는, 그 책만 있으면 우리도 집에 가서 마법 자전거를 만들어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고심 끝에 주황색 ‘톰터보’ 시리즈를 한 권씩 골라 들었지만, 초등학생인 우리 눈에도 거의 장난감에 가까운 그 책을 과연 할머니가 사주실 지 의문이었다. 봉지 과자 하나씩 고르라고 들어갔던 슈퍼마켓에서 조잡스러운 불량식품을 집어들었을 때 할머니의 허락을 받아내려고 떼를 쓰다가는 봉지 과자마저 못 사게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특유의 영업기술을 발휘하여 우리의 ‘톰터보’를 할머니로부터 무사히 지켜주셨고, 그 뒤로 열 권이 넘는 시리즈물을 동생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작은 머리를 맞대고 책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몰입해서 신나게 완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톰터보’는 <트랜스포머>의 원형이었고, 방탈출의 종이 버전이었으며, 보드게임과 도서가 결합된 창의적이고 위대한 시리즈여서, 남동생과 나에게 책을 읽는 동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릴 수 있다는 최초의 경험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지금은 절판됐다는 아쉬운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지만, 30대가 된 지금도 종종 남동생과 자전거만 보면 ‘톰터보’를 떠올리며 추억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인생 모험책을 만났으니 비슷한 류의 다른 도서들은 전부 시시하게 느껴졌고, 서점에 가면 점점 남동생과 따로 떨어져 서로 완전히 다른 취향의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각자 자기 취향의 책을 골라 읽고는 책꽂이에 일렬로 꽂아두는 일이 뿌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주로 지학사나 예림당같은 출판사에서 만든 아동 창작 소설이 대부분이었는데, ‘TV유치원 하나둘셋’은 유치하게 느껴진 지 오래고 유튜브도 코코몽도 뽀로로도 없었던 때라 책을 읽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책을 사서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엄마가 별로 물어본 기억이 없는데, 그게 신기하면서도 다행이다. 적어도 책에 대해서는 내 선택에 어떤 어른도 관여하지 않았고, 다들 그럴 만한 여유도 없으셨던 것 같다. 책을 사면 책 표지 날개에 비슷한 종류의 다른 책들을 소개해 놓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주로 그걸 보고 사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어가며 읽기를 이어갔다. 



  그런 호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IMF’라고 줄여 부르던 경제 위기의 바람 앞에 엄마, 아빠의 옷가게도 힘없이 스러졌다. 1년 넘게 다니던 영어 학원에는 어느 날 갑자기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 여러 명이 들이닥쳐 학원에 있던 박스형 모니터들을 들고 바닥에 어지럽게 깔린 종잇장들을 마구 짓밟으며 우루루 걸어나가는 바람에 남은 학원비도 돌려받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다. 영어 학원에서 본 장면과 비슷한 장면들이 TV를 켤 때마다 나왔고, 엄마와 아빠는 티셔츠 한 장도 팔지 못하고 문을 닫는 날이 계속되자 결국 장사를 접어야 했다. 부모님은 얼마간 상심이 크셨겠지만 그 우울함을 술이나 부부싸움으로 풀지는 않으셨다. 대신 남동생과 나를 차에 태우고 그동안 돈 모으느라 다니지 못했던 여행을 실컷 다니셨다. 특별히 여행 일정이나 예산을 잡아놓지 않고 보름이고, 한 달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요즘 말로 하면 ‘욜로’ 컨셉의 ‘탕진잼’으로 우울함을 해소하셨던 것 같다. 물론 천진난만했던 우리는 이게 웬일이냐 싶어 방학 기간마다 돌아올 기약 없이 떠나는 장기여행을 즐기며 최연소 ‘욜로’족이 되었다. 훗날 이 욜로 생활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남겨준 동시에,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며 아들, 딸의 학비를 충당하느라 엄마 따로, 아빠 따로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고난의 토대를 만들어 준 아이러니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 모아둔 돈으로 건물을 사든 집을 사든 했어야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라고 오지랖 넓게 한숨 쉬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부모님은 단 한 번도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옷가게를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었던 건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고,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길게 이어지는 빠듯한 일상과 고난을 견딜 힘이 생긴 거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나에게 그 욜로의 시간은 조금 다른 의미가 하나 더 추가됐는데, 집 밖의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해봐야 할 것과 알아야 할 것, 가봐야 할 곳과 먹어 보아야 할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매일이 충격이었던 인식 확장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이후로 사고 싶은 책 목록에 전혀 다른 종류의 책들이 적히기 시작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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