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과 나의 이야기
긴 여행을 몇 번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속한 세계는 학교와 집, 부모님의 옷가게, 대동문고를 포함한 상가 몇 건물, 할머니와 걷던 동네 산책길이 전부였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동안 나의 세계를 한 바퀴, 아니 두 바퀴도 돌고 올 수 있었다.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더라도 상가가 몇 건물 많아지거나 산책길이 더 길게 펼쳐지는 차원으로 내가 알고 있던 작은 세계를 반복 또는 확장으로 이어 붙이는 정도로만 가능했다. 간혹 동네를 벗어나 친척집을 가게 되더라도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TV 화면처럼 현실감 없이 휙휙 지나갈 뿐이었다.
그렇지만 먹고 자는 장소를 계속 바꾸어 가면서 사진이나 TV에서만 보던 수백 년 된 사찰의 기둥에 손을 대 보거나, 옛날 어느 나라 임금님이 보물과 함께 묻혀 있다는 집채만 한 무덤 옆을 걸으며 풀냄새를 맡던 순간, 해질녘 지평선과 수평선 근처로 물드는 아름다운 빛에 넋을 잃고 한참 동안 서 있던 시간은 내게 지극히 비현실적인 체험이면서 동시에 새롭게 발견하게 된 또 다른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동하는 장소마다 늘 이야기가 생겼다. 안면도 어느 바닷가에서는 민박집에서 해수욕을 가려고 튜브에 바람까지 넣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이틀 내내 계속되는 바람에 주인 부부의 슈퍼마켓에서 과자만 잔뜩 사다 놓고 지쳐 잠들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해수욕은 못 했어도 한 방에 넷이 모여 누워 빗소리를 들으며 깔깔거리고 웃던 날에는 해수욕을 하며 노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생겼다. 낯선 산골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밤이 깊도록 숙소도 구하지 못하고 온 가족이 쫄쫄 굶다가 밤 12시가 다 돼 기적처럼 민박집을 발견했던 날에는, 허름한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끓인 김치찌개 맛에 행복을 '만끽'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오감으로 이해했다. 여름 밤 잠옷에 슬리퍼를 신고 옆에 쪼그려 앉아 가스레인지 열기에 후끈해진 다리, 보글보글 찌개가 빨갛게 끓어오르는 소리에 이미 김치 맛으로 입에 고인 침과 그 알싸한 찌개 향기까지. 가게를 끝내고 밤 늦게 돌아오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느라 매일 현관에서 오도카니 앉아있던 서러움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것 같았다. 세상을 몇 년 살아보지 않았던 나에게도 발길 닿는 곳마다 기억할 이야기가 생긴다는 게 신기했다. 일기쓰기 방학 숙제를 위해 더 이상 매일 무언가를 상상으로 지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은 덤이었다.
그런 여행 후에 나는 더 이상 ‘말하는 인형’ 따위가 나오는 아동 창작 소설에는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사고 싶은 책 목록이 여행에서 느낀 오감의 경험만큼이나 다양해졌고,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서점에 데리고 가지 않는 날에도 혼자 서점에 가서 책장 구석구석을 보물찾기라도 하듯 돌아다녔다. 한비야 선생님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시리즈를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어린 시절 꿈이었던 ‘걸어서 세계일주’를 실천하겠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작가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시리아, 탄자니아처럼 그 당시 나에게 너무나 생소했던 지역에서 직접 겪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했다. 작가가 이란에서 만난 남자와 경험한 짧고 위험한, 그래서 더 애틋했던 사랑 이야기, 릭샤를 탔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호랑이 굴에서도 살아나올 정신력으로 탈출했던 심장 쫄깃해지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난민촌 아이들의 아픔과 처절한 삶, 역사책에는 없는 소외된 민족의 삶까지도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었다. 책 살 돈이 없을 때는 서점 통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책장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넘겨가며 세계여행을 했다. 그 당시 나에게 서점은 공항 같은 곳이었다. 작가가 책에 써 놓은 문장만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든 여행할 수 있었다. 남동생과 ‘톰터보’를 펴놓고 완전한 허구의 세계로 모험을 떠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책 속에 나오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나도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남동생과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욜로 여행 이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고단해진 엄마, 아빠의 삶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었고, 있는 힘껏 공부에 매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울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갑갑함을 느끼며 수험 생활의 긴 터널을 꽤 모범적으로 인내했다. 그렇지만 책 사는 돈은 아깝지 않은 거라고 거의 세뇌 수준으로 들어왔던 엄마의 신념에 길들어진 탓인지, 읽고 싶은 책을 정해진 기간 동안 빌려 읽고 반납하는 일에 익숙해지지를 않아 빠듯했던 용돈이 거의 다 책값으로 나갔던 것 같다. 어릴 적 대동문고를 놀이터 삼아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던 일상이 무의식 속에 남아 특별히 살 책이 없어도 최소한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어릴 때처럼 서점 통로를 누비고 다녀야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요즘은 읽고 나서 딱히 소장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책들을 중고 서점에 팔기도 하지만, 대학생 때까지는 방에 책이 쌓이고 쌓여서 더 둘 곳이 없었는데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거나 끌리는 제목의 책이 생기면 사오지 않고는 못 배겼다. 특히 대학생 때는 내 취향이 아닌 책이라도 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책이나 대학생 필독 추천 도서라 불리던 책들은 일단 사놓고 나서 읽을지 말지 고민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 중엔 유명하다고 ‘어딘가에서 들어 본’ 사진집도 있었다. 보통은 사온 책을 읽는 속도보다 새로 사올 책을 발견하는 속도가 더 빨라서,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계속 쌓여갔다.
그 무렵 아빠는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나르기도 하고, 용달차를 사서 화물 운반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시면서 월급을 받아 알뜰살뜰 가계부를 적어가는 동안, 계산대에 차오르던 돈이 다 우리 돈이었던 지난 날을 추억하는 것으로 그 시간을 버티고 계셨다. 옷가게에서 사장님 소리 들어가던 때의 얼굴과는 전혀 다른 피로한 얼굴로 쉴 틈이 없는 부모님을 보면서, 학교를 다니는 두 살 터울의 아들과 딸을 키우는 동안에는 한 번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내 방 책장에 가득 꽂혀 있던 책들이, 서점에서 사 들고 나오던 책들이 나를 눈치 없고 철없는 장녀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져도 부모님이 내가 책 사는 일을 두고 못마땅해하시던 모습을 본 일이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고생하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스스로 책으로 부리는 허세를 경계하려는 양심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악착같이 성적장학금을 받아 매 학기 등록금을 거의 면제받았고 용돈은 과외 아르바이트로 충당했지만, 내가 대학이라는 곳에 걸어 들어가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밟아 올랐던 계단은 엄마, 아빠가 젊음의 시간을 갈아 넣어 땀으로 눈물로 빚어 만든 것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 서점은 자아성찰의 공간이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