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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Jun 17. 2021

아무튼, 서점(3)

서점과 나의 이야기

한동안 서점에 가더라도 책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진열된 책 제목들을 훑어보거나 가볍게 읽고 오는 정도로 만족했다. 지적 허세로 책을 ‘읽는’ 행위는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지적 허세로 책을 ‘사는’ 행위는 부끄러웠다. 책을 사는 일이 죄책감을 동반하는 일이 되는 것은 더 싫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이 다가올 즈음에는 놀이터이자 공항에 가는 마음으로 서점에 들락거리는 유희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 줄 직업을 가질 때까지 임용시험 대비를 위해 꼭 필요한 전공서나 교재를 사서 집어삼켰다. 읽었다는 말보다는 집어삼켰다는 말이 더 어울릴 만큼 지식 포화 상태를 지향하던 시간이었다. 장시간 부모님께 기대어 시험 준비를 하는 고시생이 되지 않으려면 머릿속의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으므로, 단지 수험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이유로 교양 독서를 즐길 여유도 없었다. 곰이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동굴에서 버티듯, 나는 인간 같지 않은 생활을 1000일 넘게 버텼고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 국어교사라는 사람.



  국어교사를 내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맺은 서점과의 인연이 분명 큰 영향을 미친 게 맞다. 일하는 시간에도 계속 엄선된 글들을 읽을 것이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글에 대해 실컷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며, 종종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내 글도 쓸 수 있는데 돈도 벌 수 있으니 굳이 다른 직업을 더 탐색해볼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 생각은 적어도 80% 정도 틀린 생각이었다. 100% 틀렸다고 하기에는 교과서 글 읽기도 글을 읽는 것이고, 생활기록부나 공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글을 쓰긴 쓰는 것이니 넉넉히 20%는 인정해야겠다. 적응할 만하면 바뀌는 교육과정에 따라 매번 수십 종의 국어 교과서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교육과정에 맞는 교과서들이 인쇄되어 우리 손에 쥐어질 때쯤엔 이미 세상은 또 변해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를 곱씹게 되는 글도 곧잘 포함되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국어 교과서들이 온갖 잡다한 텍스트의 집합체가 되어 의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을 요구하는 학습 문제로 시험 대비를 하게 만든다. 국어교사들조차 ‘이걸 왜 하라는 거지?’ 물음표가 수십 개 떠오르는 안타까운 상황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그런 상황을 극복해보기 위해 모여서 절실하게 연구하는 모임들이 계속 생겨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럴듯하게 용어만 바뀌고 결국은 ‘서열화’라는 큰 개념으로 수렴될 입시 체제에 비뚤어진 출세 지향주의가 환상적으로 맞물려 나타나는 갖은 부작용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정규분포를 지향하는 평가에 등을 돌리고 한 시간, 길게는 한 학기 수업을 색다르게 진행하더라도 종국에는 언어영역 한 문제를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운명이 갈릴 학생들에게 과연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 자율적으로 새로운 텍스트와 평가 방식을 선택해 보려는 노력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단지 ‘나는 좀 다른 교사’라는 자아도취의 결과물일 뿐인지 회의감에 허우적거렸다. 오랜 시간 가정 문제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서적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상담하다가 무력감을 느끼거나, 상식 밖의 학부모 민원에 대응해야 하거나 학교폭력 사안조사를 위해 경찰인지 교사인지 알 수 없는 행정 업무들을 처리하는 날에는 다시 곰이 되어 동굴로 들어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수업에 대해서는 해가 거듭될수록 텍스트나 평가 방식보다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세계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평생 독자로 이끌 것인가의 문제가 고민의 핵심이 되었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진로희망을 정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이나 진로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커져 갔다. 그러다가 문득, 남동생과 나를 그저 서점에 풀어(?)놓았던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모든 고민의 답을 찾을 가장 안전한 방법은 결국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서점 놀이를 시작했다. 나의 놀이터였다가, 공항이었다가, 자아성찰의 공간이기도 했던 서점은 이제 고민상담소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에는 주로 ‘독립서점’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서점들이 유행처럼 늘어나고 있었는데, 대형서점들의 상업적 횡포에 맞서 새로운 정체성을 띤 작은 서점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 자체적으로 특색 있는 홍보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들은 전자책의 유행과 더불어 디지털적 아날로그 또는 아날로그적 디지털로 애매하지만 현명한 생존 방식을 터득했으므로, 작은 서점들의 노력은 결국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마무리될 것이라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우려한 대로 새로 생기는 서점들만큼이나 폐업하는 서점들도 많아졌고, 최근에 열리는 작은 서점 창업 워크숍이나 강연에서는 책방 주인에 대한 감성적인 로망 따위 버리고 돈에 쪼들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바위를 굳이 치지 않고도 계란 나름대로 끝까지 깨지지 않고 버텨 부화할 방식을 발견한 서점들은 새로운 서점 문화를 탄생시키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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