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승 Jul 31. 2021

우리는 매일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지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매일 출근길에 운전하면서 107.7MHz로 주파수 맞추면 '김영철의 파워FM'에서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줄여서 '진미영'이라고 부른다.)가 방송중이다. 출근 시간은 늘 크게 변동이 없으니 이제 '진미영'이 없으면 어쩐지 아침 시간이 허전할 정도로 타일러의 목소리가 익숙해졌다. 그는 배움의 의욕이 넘치면서도 호들갑스럽게 유머러스한 개그맨 김영철의 멘트에 빵빵 터지면서도 정확한 발음과 표현의 뉘앙스까지 유창한 한국어로 설명해주데, 그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감탄과 부러움의 감정으로 자극 받아 하루를 시작할 기운이 생기곤 한다. 분명히 같은 또래인데 국제학과 외교학을 전공하고 8개 국어를 구사하며 방송인의 센스까지 두루 갖춘 그를 보면, 8개 국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지금 하는 일을 즐겁게, 의미 있게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든다. 지금은 종영된 JTBC <비정상회담>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던 모습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영어책 말고 처음으로 쓴 책이 '기후 위기'에 관한 책이라니, 신선하면서도 타일러답다고 생각했다. 보통 셀럽들이 쓰는 책은, 특히 에세이의 경우라면 개인적인 성장과정이나 방송 일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솔직한 감정의 기록들을 화보와 곁들여 펴내는 경우가 많다. 책을 처음 펼쳐들고 프롤로그를 읽는데, 정말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쓴 책이구나 싶었다. 타일러의 사진은 몇 장 없고 그나마도 다 흑백사진이며, 오히려 중간 중간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뒷받침할 통계 자료들이 더 눈에 띄었다. 프롤로그의 그가 쓴 마지막 문장이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환경을 이야기하는 건, 누구라도 당장 말을 꺼내고 너나없이 당장 행동해야 할 만큼 지구의 상황이 절박해서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마음으로 작은 용기를 낸다.(9쪽)



    이 책은 타일러가 출판사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표지와 본문에 모두 FSC 인증 종이를 사용했고 친환경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 인쇄했다. FSC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나무를 관리해서 숲과 야생 동물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산림 관련 친환경 국제 인증이다.

종이의 원료는 나무이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만들면 그만큼의 숲이 파괴된다. FSC 인증 종이를 사용하면 합법적으로 벌목하고 다시 나무를 심어 내가 구입한 만큼의 숲이 보전되기 때문에 환경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 (193쪽)

그러나 제작비를 맞추기 어렵다거나 인쇄소에서 잘 모른다는 등의 이유로 아직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는 FSC 종이 사용에 대한 합의가 거의 이루어지기 어렵다. 어려움을 뚫고 자신의 신념에 맞는 책을 출간했다는 내용이 뒤에 이어질 내용의 진정성을 더해 주었다.  


    타일러가 책에서 스스로 몇 번 언급했듯이 그가 환경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환경 문제는 전문가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이므로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전문가가 감지한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모두가 당장 움직여야 할 일들에 대한 절박한 호소문이다. 미국 버몬트 주에서 자란 그는 자연 속에서 성장하면서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신비, 자연이 허락하는 깨끗하고 평안한 쉼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집과 마을을 가루로 부숴버리는 토네이도를 보며 대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자비 경험한 적도 있다. 그래서 자연 앞에 경외심이 없는 인간에게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있는 땅과 공기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책에 공들여 기록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는 시작에 불과하며, 기온 상승으로 인해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새로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노출되어 끊임없이 감염병으로 고통받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당장에 눈 앞에 보이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에만 공포스러워하고 지구인이 다같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닥칠 수밖에 없다. 그는 각종 통계 자료를 인용해가며 비전문가인 독자도 이해하기 쉽게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한다. 한 해 동안 지구가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의 양보다 훨씬 많은 소비를 하며 계속해서 적자를 내고 있는 78억 명의 인류가 단 하나뿐인 지구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는데, 더 충격적인 건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대부분 관심이 없다는 거다. '이러다 우리 다 죽어요!' 하고 외치는 누군가가 나타나도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경제적 이익, 정치적 이해관계와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모두가 한심하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독자의 눈 앞에 계속 들이댄다.


해결책은 분노에 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이미 1950년대부터 알고 있었다. 또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1970년대에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일을 했을까? 석유 기업과 석유를 이용한 다른 대기업들은 로비를 통해 업체를 띄우고 환경 이슈를 파묻는 일을 계속해나갔다. 기후위기가 거짓이라는 식의 날조된 연구를 발표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심각한 환경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106쪽)


그럼 화가 나야 한다. 누군가의 사익을 위해서 우리의 미래가 희생된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도 은퇴 후 살아갈 땅, 침수 위험 없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땅을 빼앗아 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게 아니다. 고의적인 것이다. 몇몇 기업, 몇몇 국가들이 기후위기 안에서 수익을 창출해놓고 본인들을 위한 유리한 입장을 차린 것이다. 그걸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호구로 살아왔다는 것을. (106쪽)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환경 오염의 심각성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지구가 아파요' 같은 환경 동화책이나 학교 교과서에서, TV 공익 광고에서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한 번도 그런 교육 내용에서 경고하는 우울하고 섬뜩한 미래를 피부로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심각한 환경 문제는 언제나 학교 교과서에만, 환경 교육 PPT와 광고에 쓰인 몇 장의 사진들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가 지구를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한다는 몇 가지 수칙들도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면서 규칙적인 식습관을 해야 건강하다는 그런 당연하고도 식상한 충고나 다름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최근에 일기예보에서 매년 기록 갱신을 거듭하는 폭염과 강추위, 이른 장마나 과하게 긴 장마, 간절기가 사라진 것 같은 급격한 기온 변화 등 무언가 이상하고 불안한 변화의 조짐들이 가까워졌다. 코로나19로 집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운 상황이 되고 보니, 재난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어쩌면 차례대로 다 눈 앞에서 실현되려는 시작점에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과연 이 길고 긴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끝날 수 있을지, 그 전쟁이 끝나면 더 큰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제는 정말 알아야만 할 때가 온 것 같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되는 중요문제가 거대한 바윗덩어리처럼 이미 너무 바짝 다가와 있어서 바위 전체는 올려다 보지 못하고 그 그림자 안에 서서 어두워졌다고 불안에 떨고 있기만 한 건 아닐까.


   그는 대학 시절 읽었던 마크 라이너스의 책 <6도의 멸종>이라는 책의 내용을 들어 지구의 평균온도가 6℃

상승하면 생물의 95%가 멸종하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바다가 산성화되면 지구가 생물학적 원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끔찍한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기후 위기는 이미 시작되어 지구의 기온이 이미 1℃ 올랐고, 여기서 1℃가 더 오르면 마이애미, 상하이, 보스턴 등 도시의 상당 부분이 침수된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 난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도 기후 위기에 있음을 지적하며, 이제 우리는 누구나 환경 난민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책임 면피용으로 일회용품 분리수거 잘하고 안쓰는 콘센트 플러그 뽑아놓는 것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바라보고, 기후 위기를 외면하는 국가나 정치 세력, 또는 기후위기의 이면에서 이익을 보장받는 이기적 기업은 더 이상 지구에 발붙일 수 없도록 인류 차원에서 철저한 응징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에코-테러리즘'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그와 관련된 법이 만들어져 환경단체가 기업에 경제적 손실을 입히지 못하도록 단체의 발을 묶었으며, 최근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는 그레타 툰베리를 중심으로 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에도 '급진파' 프레임을 씌워 비난하기만 한다. 적어도 그 십 대 청소년들이 느낀 두려움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질문해야 하는 기성세대들은 오늘도 여전히 그들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상향 조정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특히 자영업자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국가에서 그들을 위해 마땅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앞으로 기후 위기로 인해 곧 닥쳐올 것으로 예견된 더 큰 고통은 어떤 주체가 당장 돈으로 보상해줄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며, 보상받은 돈으로 버티기만 해면 해결될 미래도 없다. 타일러의 고향 버몬트 사람들의 생계는 주로 스키장을 중심으로 벌어들이는 관광 수익에 달려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600개가 넘는 스키장이 문을 닫고,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적설량이 41%로 감소하는 바람에 스키 시즌이 줄어 스키장 뿐만 아니라 그와 연결된 다른 산업들도 모두 환경과 함께 파괴되고 있다고 한다. 눈이 안 온다고 국가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한 시즌 보상받는다고 해서 다음 해에는 눈이 다시 많이 올까?



    타일러의 책을 읽고 며칠 안 지나 위와 같은 기사를 보게 됐다. 같은 시간 코로나19 확진자 관련 글에는 페이지를 넘겨도 끝없이 달려있는 댓글과는 달리, 이 기사에는 댓글도 몇 개 없고 기사 상단에 반응도 몇 안 된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기사를 클릭해보지도 않고 그냥 흘려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기후 위기는 먼 나라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감염병에 관한 이야기이며 내일 날씨에 관한 이야기이고 생계를 넘어 생존을 위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타일러 덕분에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문제일수록 환경전문가들이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진지하게 강연하고 무대를 떠나는 방식의 홍보가 아니라, 비전문가 일반인들의 절박한 호소가 더 진정성있게 다가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건 '비거니즘'에 대한 그의 견해였다. 그는 식품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나타낸 표를 인용하여 환경적 관점에서의 비거니즘과 채식에 대해 언급한다.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높은 이유는 산림을 없애 농장을 만들고 가축을 키우면서 자연이 가진 탄소흡수원을 없애기 때문이다.(113쪽)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에서 발표한 '기후변화와 건강을 위한 육식자 가이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식품 중 양고기, 소고기, 치즈의 온길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생산, 운반, 판매 등 전 과정을 산출하면 양고기는 39.2kg, 소고기는 27kg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양과 소는 소화 과정에서 메탄을 배출하는 반추동물로,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5배 강력한 온실가스이다.(113~114쪽)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기를 조금 덜 먹는 일, 채식 식단을 늘리는 일, 음식을 남기지 않는 실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114쪽)


또 고기를 먹더라도 온실가스를 많이 발생시키는 양고기, 소고기 대신에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115쪽)


잔인한 축산 방식에 혀를 내두르며 불쌍한 동물들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감성적 논리보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리는 식습관의 필요성이 더 크게 와닿았다. 과거에 비해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몇몇 채식주의자들이 보이는 '윤리적 우월성'의 문제를 들어 불편한 논의가 이어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타일러의 이런 논리라면 윤리적 우월성 문제와 별개로 당장 우리의 생존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식습관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채식 식단을 늘려가면서, 환경친화적인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고, 환경단체와 환경운동가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는 일. 지구의 미래를 갉아먹을 이기적인 기업과 국가의 행태에 분노의 목소리를 내는 일. 그의 글을 읽고 이런 작은 글을 적어두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실한 기록은 별 것 아닌 일상에 빛이 나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