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누군가 인생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 한 권을 꼽는 것이 힘들어서 그저 당시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몇 권 이야기하고 어떤 점에서 좋았고 어떤 상황에서 읽으니 도움이 되더라 하는 정도의 대답으로 대강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지>는 그 자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지만, 이후 속편인 <아들들>, <분열된 집안>과 함께 깊이를 더해가며 걸작으로 거듭났다. (속편을 모두 합쳐서 지칭하는 경우 <<대지>>라고 표시하도록 한다.) 왕룽과 그 셋째 아들 왕후, 손자 왕옌에 이르기까지 삼대에 걸친 이야기는 중국의 남부와 북부, 해안 도시, 나아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넘나들면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이 묵직한 뼈대로 세워져 있어서, 읽는 내내 그 뼈대를 어루만지며 사유하는 시간을 허락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갈등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며,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어떤 세대에게도 평생에 걸쳐 삶으로 터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대지>>는 땅에 대한 이야기면서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땅에 일생을 바치는 농부의 건강한 노동도,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어놓고도 모두 자기 것일 수 없는 소작인의 서러움도, 서로 힘을 겨루는 군벌의 전쟁과 비적의 약탈도, 구세대와 신세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도, 새로운 건물을 지어 새 나라 새 도시를 세우겠다는 야망도 모두 땅 위에서 펼쳐진다.
<대지>는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집안을 가난으로부터 일으켜 세우는 왕룽의 이야기이며, <아들들>은 셋째 아들 왕후의 성장기를 중심으로 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분열된 집안>은 왕후의 아들 왕옌을 통해 부모-자식 간의 갈등을 세대 갈등으로 확장시킨,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분열된 집안>은 앞선 두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작품을 읽는 것과 같은 신선함을 주는데, 그것은 어쩌면 구세대와 신세대가 서로 느꼈을 이질감과도 닮아있다.
부모는 자식의 대지이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자식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영양분이 넉넉하고 단단한 흙이 되어주는 것이다.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무난히 열매를 맺는 작물들에게도 견뎌야 할 비바람이 있고, 열매를 맺기도 전에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작물도 대지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이다. 쓰러져 바람에 흩어졌다가도 맑은 날에 돌아가 다시 딛고 일어설 땅이 있다는 믿음, 그래서 어떤 인생의 고난에도 쉽게 바스러지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가지게 하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이다. 세월의 힘으로 깨달은 것들을 자식들에게 전달할 때도 그것은 넌지시, 맨발로 흙의 감촉을 느끼게 하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갈등은 대지가 하늘의 영역을 침범하려 할 때 시작된다. 자연의 순리대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스스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을 기회를 빼앗는 것, 어쩌면 그것은 가장 잔인한 형태의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왕룽이 왕후에게 농부의 삶을, 왕이가 둘째 아들에게, 왕후가 왕옌에게 군벌의 삶을 강요했던 것처럼. 그것은 종종 자식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비극으로 치닫게 하거나 자식이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을 살게 만든다. 비뚤어진 사랑은 땅을 썩게 만든다.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야 할 일도 그와 같다. 변화의 바람을 자연스럽게 받아 흙의 숨을 고르는 것, 쏟아붓는 비는 흠뻑 맞아 대지를 적시는 것 그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오래된 관습을 버리지 않으려는 고집은 어리석다. <분열된 집안>에서는 구세대와의 갈등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신세대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체념하고 순응하거나, 극단적으로 반항하거나, 양쪽을 모두 이해하기에 어중간한 위치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거나, 그것도 아니면 회피를 거듭하며 방랑 또는 유랑의 길을 걷는다. 부모가 자식을, 구세대가 신세대를 단지 오래된 법률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속박하려 들수록 그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더 큰 반항과 갈등을 일으켜 관계의 몸살을 앓는다.
다만 <분열된 집안>의 결말에서는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도 내면 깊숙한 곳의 사랑을 잃지 않은 관계는 언젠가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그것이 곧 건강한 발전의 토대이며 희망임을 암시한다. 왕옌이 해안 도시에서 맹을 통해 만났던 혁명 당원의 여자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과 미국인 메리를 끝내 거부했던 것은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왕옌은 새로운 세대로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조국의 땅으로 돌아와 그 어떤 극단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자식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발전적 방향을 모색한다. 그가 선택한 메이링은 그 점진적 발전의 상징이다. 왕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흙벽집에서 농부의 옷을 입고 있던 왕옌은 메이링이 원한다면 언제까지고 농부의 옷을 입겠다고 말한다. 메이링이 “언제라도 입으실 필요는 없어요. 그때그때 경우에 따르시는 편이 좋지요. 사람은 언제나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답하는 다음 장면은 마지막 문장 ‘우리 두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로 이어진다. 사랑은 차마 용서할 수 없던 것을 용서하게 한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걸어나가게 한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질수록 이해의 폭은 넓어진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전에 분명히 분노했으나 이제는 연민하게 되는 과정은 어쩌면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영원히 옳은 단 하나의 정답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분열된 집안>에서 '셍'의 삶을 이기적이라 비난할 자격이나 '맹'의 삶을 분노에 가득찬 극단주의자의 삶이라 비난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어떻게 갈등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므로, 선택의 주체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분열된 집안>은 왕옌이 그 어려운 선택을 하느라 지난한 성장통을 겪는 과정을 전지적 시점으로 면밀하게 따라간다. 독자는 왕옌의 입장이 되어 다른 선택을 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지만, 그의 고뇌도 함께 겪으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대지>>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자격지심’이다. 왕룽에게 그것은 땅을 소유한 부자에 대한 것이었고, 왕후에게는 강한 군대를 가진 권력과 지위에 대한 것이었으며, 왕옌에게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 생활양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하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한평생 무언가에 매달릴 수 있도록 강인한 삶의 의지를 불어넣기도 한다. 제목인 <<대지>>가 주는 광활하고 단단한 느낌은 땅 그 자체라기보다는 어쩌면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끈기와 의지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미국인임에도 어려서부터 오랜 기간 중국에서 거주하며 중국의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계층과 직업, 성별, 문화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쪽으로의 치우침이 없는 균형감 있는 통찰력을 갖는다는 것, 그것을 이 정도의 문학적 성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인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 작가임에도 구시대의 악습으로 핍박받는 여성의 고난사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오란과 렌화, 리화에서부터 아이란과 아이란의 어머니, 메이링, 그리고 노교수의 부인과 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상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놀라운 부분이다. 특히 오란과 리화를 통해 구세대 여성상에서 나타나는 인내와 인종의 미덕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가 하면, 왕이의 첫째 부인이 호감을 품기 어려웠을 리화에게 자기 자식을 맡기고 신뢰하는 부분, 아이란의 어머니가 아이란을 양육한 방식을 보면, 고부관계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성들끼리는 세대 간의 갈등보다 자유연애, 자유결혼, 또는 결혼 없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갈망으로 서로 공감하며 뭉치게 한 점에서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였다.
무려 1012페이지를 끝으로 <대지>와 <아들들>, <분열된 집안>으로 이어지는 대작을 완독하면서 고전 읽기를 멈출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진작 읽었어야 했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그 전에 읽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과 발견해내지 못했을 의미가 있음을 확신하며 고전 읽기의 계기가 되어 준 딥인고전 식구들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