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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Oct 27. 2024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IV:
시간을 거니는 건축 순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은 약혼자 이네즈와 그녀의 친구인 폴 부부과와 함께 베르사유 궁전 방문하게 되고 거기서 폴은 투어가이드처럼 설명을 한다:

"I believe Louis moved his court here, in 1682. Originally, all this was swampland."

(루이 14세가 1682년에 여기로 궁정을 옮겼죠. 원래는 모두 습지였다.)     

"In fact, if I'm not mistaken, in Old French, the word 'versailles' means something like 'terrain were the weeds have been pulled.'"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고대 프랑스어로 '베르사유'라는 단어는 '잡초가 뽑힌 땅'이라는 의미와 비슷하다.)

이 대사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의 시작이 얼마나 소박했는지를 상기시키며, 인간의 의지로 자연을 변화시킨 놀라운 과정을 암시한다.

"The middle section here is French classical style at its height. The work, I believe, of Louis le Vau."

(이 중앙 부분은 프랑스 고전주의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루이 르 보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사는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적 특징을 설명하면서, 프랑스 고전주의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루이 르 보는 베르사유 궁전의 초기 설계자로, 프랑스 바로크 양식의 대가였다.


영화는 이어서 파리의 상징적인 건축물들을 보여준다. 인상 그랑팔레의 웅장한 유리 천장 아래에서 1920년대의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장면, 루브르 박물관의 고풍스러운 회랑을 거닐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순간들,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에서 세느 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시간 여행을 준비하는 장면들이 우리를 매혹한다.

특히 인상 그랑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당시 최첨단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유리와 철골 구조의 혁신적인 결합은 19세기 말 파리의 진보적인 정신을 대변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영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12세기의 요새에서 시작해 왕궁을 거쳐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기까지, 루브르의 변천사는 그 자체로 파리의 역사를 대변한다. 현대적인 유리 피라미드와 고전적인 건축양식의 조화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파리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처럼 건축물들을 통해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를 현실감 있게 구현한다. 각 건축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시간의 층위를 보여주는 증인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된다. 길이 현대 파리에서 느끼는 노스탤지어는, 이러한 역사적 건축물들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진다.     

"Actually, Paris is the most beautiful in the rain."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가 가장 아름답죠.)

"I feel that's what I'm always saying. I couldn't agree more with you."

(나도 항상 그렇게 말해왔어요. 정말 동감이에요.)

"Yes, it is more beautiful. By the way, my name is Gabrielle."

(네, 정말 더 아름답죠. 그런데, 제 이름은 가브리엘이에요.)     


비 내리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에서 길과 가브리엘이 나눈 이 대화는, 파리의 가장 로맨틱한 순간을 포착한다. 1900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파리에서 가장 화려하고 우아한 다리로 손꼽힌다. 특히 비가 내릴 때면, 금빛 장식들이 젖은 노면에 반사되어 더욱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영화에서 현재와 과거를 잇는 마법의 통로로 기능한다.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함을 간직한 이 다리는, 세느 강의 잔잔한 물결과 함께 시간 여행의 서막을 알린다. 청동과 금으로 장식된 예술적인 조각상들, 우아한 아르누보 양식의 가로등, 그리고 화려한 장식들은 19세기 말 파리의 황금기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다리의 네 모서리를 지키는 황금빛 페가수스 조각상들은 예술과 과학의 발전을 상징한다. 이는 마치 길이 매일 밤 시간 여행을 떠나며 만나는 예술가들처럼, 창조적 영감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리 위에서 비를 맞으며 나누는 대화는, 시대를 초월한 파리의 로맨틱한 정서를 완벽하게 포착한다.

가브리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이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시간과 감정이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비 내리는 파리의 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현대의 관광명소가 아닌, 벨 에포크 시대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변모한다. 황금빛 장식들이 빗물에 반사되어 만드는 환상적인 광경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창조한다.


이 다리는 세느강을 건너 그랑팔레와 프티팔레를 연결하며, 물리적으로도 파리의 예술과 문화를 잇는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서 길이 시간 여행을 통해 만나는 예술가들처럼, 이 다리도 각기 다른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파리는 비가 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라는 대사는, 단순한 날씨 묘사를 넘어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로맨틱한 정서의 절정을 표현한다. 젖은 포석길 위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 우산을 쓴 연인들의 발걸음 소리, 세느 강의 잔잔한 물결 소리가 어우러져 만드는 파리의 밤은 그 자체로 시간을 초월한 예술이 된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이처럼 영화 속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닌, 시간과 감정이 교차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 통로이자, 예술과 사랑이 만나는 교차점이며, 파리의 영원한 로맨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비 내리는 밤, 이 다리 위에서 나누는 대화는 파리의 모든 시간과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마법의 순간이 된다.          


결국 이 영화는 파리의 건축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진정한 황금시대는 특정 시간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마치 베르사유가 습지에서 궁전으로 변모했듯이, 우리의 현재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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