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떻게 '귀하게' 키우는 건가요?
주변 친척들이나 친구 부모님들이 가끔 자신들의 막내딸이나 외동아들은 귀하게 자라서 요리나 빨래 같은 집안일들을 할 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게 어떻게 '귀하게 키운다'의 정의가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분들이 하는 말씀에 따르면 자식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힘들고 귀찮은 집안일들도 대신해 준 거라며 자신들이 했던 '귀하게 키운 행동'을 포장하고는 하시지만, 그 결과, 결혼할 나이가 다 돼서도 자기 밥 한 끼 차리지 못하고 자기가 입었던 옷 하나 빨래할 줄 모르는 '좀 모자라 보이는' 자기 자식들을 보는 눈빛에서 나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난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귀한 외동아들'이다. 그런데도 난 요리, 빨래, 청소 등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할 줄 안다. 나의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경제, 수학, 역사 등 학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요리의 간을 맞추는 법, 빨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팁, 청소를 쉽게 하는 방법 등의 실용적인 지식도 아낌없이 가르치셨다. 그 덕분에 나는 스무 살 이후에 기숙사, 자취방, 그리고 군대에서 생활할 때도 어머니가 주신 그 가르침 덕분에 사람답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살 수 있었고 나는 그것에 항상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 많은 어른이 나를 볼 때면 자주 "그렇게 귀한 외동아들이면 부모님이 귀하게 키우시느라 집안일 같은 건 잘 못할 것 같은데 참 신기하다"라며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귀하게 자랐기에 이런 다양하고 실용적인 지식을 많이 배웠다"라고 말씀드린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기에 자신들이 어렵게 배운 지식을 나에게 전수하신 것이다. 만약 귀하게 키운다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로 인해, 내가 그 실용적 지식을 배우지 못했다면 난 아마 내 부모를 꽤나 원망했을 거 같다. 요리, 청소, 빨래 등의 집안일은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것들도 다 잘하는 방법이 있고 책으로만 배워서는 어렵게만 느껴지고 충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또한 막상 시간을 드려서 배우려고 하면 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가 자식에게 실생활에서 가르치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서론에서도 짧게 언급되었듯이, 집안일을 하나도 안 가르친 자신들의 '귀한' 자식들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 건 그들이 결혼을 생각할 나이쯤이 되어서이다. 자신들의 '귀한' 자식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그들의 배우자는 집안일을 할 줄 아는, 상대적으로 '덜 귀한' 자식들이어야 할 텐데, 그제야 자신들의 '귀하다'는 정의가 잘 못 되었다는 걸 느끼고 사돈 되는 상대방 집안에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할 때가 많다. 기껏 잘 가르쳐서 자기 몫을 해내는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서 뿌듯해했던 상대 배우자의 부모 입장에선 참 씁쓸할 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그나마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어른들의 경우이고, 실제로 자신의 '귀한 장남' 혹은 '귀한 막내딸'을 평생 떠받들고 모셔줄 '덜 귀한' 혹은 '아예 귀하지 않은' 공짜 잡부 비슷한 배우자를 찾는 부모들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떠한 부끄러움이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자식을 얼마나 귀하게 키웠으며 배우자인 너도 내 자식을 그렇게 귀하게 모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배우자 또한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라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는 기쁨보단 받는 기쁨에만 초점이 맞춰진 그 이기적인 인격에 역겨움을 넘어 놀라움까지 느끼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귀하게 키운다"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귀하게 키우는 것은 흔하고 하찮은 집안일보단 더 고등하고 어려운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란 잘못된 정의가 오히려 그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내 주변의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어렸을 적부터 손에 물 묻히고 불에도 데어보며 부모로부터 집안일을 배웠고 그것으로부터 더 나아가 학업에서든 직업에서든 자기 몫을 해내는 책임감 있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이처럼 나에게 너무 귀하기에, 사회나 다른 이들에게서도 귀하게 쓰일 수 있도록 내 자식에게 삶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집안일'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귀하게 키운다"가 아닐까?